배우 최희서. /사람엔터테인먼트

“솔직하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었어요.”

첫 산문집 ‘기적일지도 몰라’(안온북스)를 낸 배우 최희서(36)를 서울 중구의 한 모임공간에서 만났다. 영화 ‘박열’(2017)에서 독립투사 박열을 사랑한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 최희서. 그 역할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과 대종상 여우주연상, 신인여우상을 받은 배우다. 배우가 자신의 문장을 가지고 책까지 펴내는 건 매우 드문 일. 그는 “언제나 허구의 인물을 연기하기 때문에, ‘최희서’라는 사람을 솔직하게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최희서는 책을 내며 글쓰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대학생 때는 시나리오 등 글을 꾸준히 썼다. 그러나 영화 ‘킹콩을 들다’(2009)로 데뷔해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쯤 글쓰기를 관뒀다. “연기를 해야 하는데 다른 일에 몰두하는 제 자신을 그 당시에 용납을 못 했어요. ‘박열’ 제작기를 ‘브런치’에 써보자는 제안을 받아 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재밌어서 더 써보기로 했어요.”

시작부터 솔직하다. 최희서는 30살이 되던 해 ‘20대 여배우’로 남고 싶어 프로필의 생년월일을 고친 일화를 고백한다. “사소한 거짓말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으로 생년월일을 스르륵 삭제하고 새롭게 입력했다.” 영화 ‘동주’(2016) 캐스팅에 얽힌 기적 같은 경험들도 담았다. 오디션마다 낙방하던 2014년, 지하철 3호선에서 신연식 감독을 우연히 만난다. 연극 대사를 외우는 모습을 본 신 감독으로부터 명함을 받았고, 그의 추천으로 후카다 쿠미 역을 맡는다.

최희서는 “솔직함이 글을 쓴 원동력이었지만, 솔직해지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NG여도 좋다’는 영화 ‘아워 바디’(2019)를 촬영하며 겪은 실패의 순간을 담았다. “연기를 잘 못해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당시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기분이라 힘들었어요. 그럼에도 솔직한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으니, 가장 좌절했던 순간 중에 하나를 끄집어냈어요.”

그에게 이번 책은 ‘선물’이다. “잊힐 수도 있던 순간들을 글로 옮기면서 영원히 한 권의 책으로 남게 됐어요. 저로부터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솔직히 독자보다는 제 자신을 위해 쓴 게 맞아요. (웃음) 그런데 책을 읽으신 분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하는 걸 들으며, 다른 분들에게도 위로를 주는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적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기적의 범위를 넓혀서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최희서는 이제 배우라는 직업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연기자는 연기만 해야 한다, 언제나 최고의 연기를 보여줘야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났어요. 인생은 생각보다 계획적으로 흘러가지 않아요. 당장 책을 쓸 계획은 없지만, 지금은 책이든 연출이든 하고 싶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