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 김보람 옮김 | 468쪽 | 다산책방 | 1만8000원
산 하나를 넘을 때마다 시간대가 바뀐다. ‘시간의 계곡’에는 60년 전, 40년 전, 20년 전, 20년 후, 40년 후, 60년 후의 세계가 마치 버스 노선의 정류장처럼 놓여 있다. 지금 여기서 동편으로 가면 미래에, 서편으로 가면 과거에 닿을 수 있다. 나의 현재 역시 다른 밸리의 주민에게는 과거 혹은 미래다.
밸리와 밸리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누군가 철책을 넘어 다른 밸리로 간다면 그것은 애도 여행일 것이다. 나이 제한이 있을 만큼 버거운 이동, 편도로만 이틀이 걸리는 그 여행이 절실한 이유에 대해 청원을 하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여행이 시작되어도 이미 벌어진 사건에 개입할 수는 없다. 그리운 대상을 몰래 바라보는 것이 허락될 뿐이다. 오직 단 한 번.
그러나 어떤 여행들은 흔적을 남긴다. 열여섯 살 ‘오딜’이 친구 부모님의 애도 여행을 목격한 것처럼. ‘에드윈’의 부모님이 미래에서 출발해 여기로 왔다는 것은 곧 에드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소설은 오딜의 혼란을 따라간다. 미래를 미리 알아버린 사람의 버거움과 선택에 대해서.
사회적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걸어서라도 과거 혹은 미래로 갈 수 있다는 설정이 애틋하다. 특별한 장치나 기술이 없어도 가능한 시간 여행이니까. 인간의 걷기야말로 시간의 노젓기 행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밸리 사이의 중간 지대인 산으로 들어가 버린 젊은 은둔자’(244쪽)의 결말도 인상적이다. 불로를 얻었지만 결국 미쳐버렸다는 것. 시간 앞에서 맞닥뜨리는 인간의 한계는 곧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