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한 한국 기업 주재원 유모(54)씨는 최근 월급을 삭감당한 기분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1만달러가량 됐던 월급이 지난달 말에는 9000달러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유씨 회사는 원화를 기준으로 월급을 주는데, 1달러당 환율이 치솟으며 사실상 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유씨는 “몇 달째 고환율이 이어지면서 불필요한 외식은 끊고 대학생 딸이 취미 삼아 하던 300달러짜리 필라테스도 지난달 관두게 했다”고 전했다.
1달러당 환율이 지속적으로 1250원을 웃도는 고환율 상황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그 여파가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하나은행에 따르면, 달러당 원 환율은 특히 이달 들어 가파르게 올라 지난 12일 1290원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실제 이 기간 중 은행 창구에서 달러를 살 때 적용되는 환율이 최대 1313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연평균 1259.5원을 기록한 후, 요즘 같이 장기간 고환율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 여파로 해외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꿔 생활해야 하는 주재원 가족이나 유학생들 사이에서 비명이 나오고 있다. 거리 두기 해제로 기대감이 커진 해외여행 업계도 전전긍긍하는 중이고, 해외에서 각종 물품을 수입해서 쓰는 업종에서도 가뜩이나 물가가 치솟았는데 환율 탓에 부담이 더 커졌다고 호소한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김명선(45)씨는 남편과 두 아이가 미국에 있다. 석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그의 남편은 요즘 밤에 부업이라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작년 1월 아이들이 출국할 때만 해도 달러당 환율이 1170원이었는데, 요즘에는 1270원 안팎까지 올랐다. 3인 생활비가 월 6000달러에 달하는데, 1년 새 한국 돈으로 매달 50만~60만원씩 더 들고 있어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유학이나 교환학생 등을 잠시 중단할까 고민인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거리 두기 해제로 올여름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날 것을 기대하던 여행업계도 크게 당황하고 있다. 적지 않은 지역에서 호텔이나 관광 프로그램 등을 달러 기준으로 계약하는데 계속 이 금액이 오르고 있어서다. 특히 일부 상품은 계약금을 낸 후, 여행 직전에 원화로 잔금을 치르는데 환율이 오르면서 계약할 때보다 내야 할 돈이 늘어 항의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관광중앙회 관계자는 “하와이나 몰디브 등 반년쯤 전에 예약해야 하는 인기 있는 지역일수록 그사이 환율이 많이 올라 고객들의 불만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가뜩이나 물가가 전방위적으로 오르는 가운데 높은 환율은 각종 수입품을 재료로 써야 하는 분야에서 비용 부담을 더 키우는 요소가 되고 있다. 수입품에 달러로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경우가 많아서 같은 양을 수입해도 달러 가치가 오를수록 평소보다 비용이 더 든다. 축산업이 그중 하나다. 25년째 전라남도 보성에서 돼지 농장을 운영하는 정연우(59)씨는 “농장에 있는 돼지가 3만 마리가량 되는데, 올해 들어 생산비에서 사료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60%에서 70%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돼지의 경우 해외에서 들여오는 사료와 곡물을 반반씩 섞어서 먹여야 하는데, 각각 전년 대비 35%가량씩 값이 올랐다고 한다.
국내의 한 대학원 2년 차 석사인 윤모(27)씨는 최근 연구실에서 실험 진행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광전자소자 개발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수입 재료인 ‘초고분자량 폴리에틸렌’ 가격이 지난해 7월 500g에 42만4400원에서 46만7400원으로 약 1년 새 10% 올랐다는 것이다. 그는 “재료를 좀 덜 써서 실험하는 방법이 없는지 고민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환율이 오르면서 앞으로 전방위적으로 물가를 더 자극해 서민 경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