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이었다. 퇴근 후 집에 가는데 동네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카네이션을 들고 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선물을 준비했을까? 기대를 안 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큰애는 상자로 무언가를 선물로 만들다가 엄마가 생각보다 일찍 왔다며 그만뒀다. 제발 끝까지 만들어주라고 부탁해도 싫다고 했다. A4 용지에 괴발개발 쓴 “엄마 사랑해요” 글씨로 마감했다. 둘째는 테이프를 겹겹이 감아 밤톨만 한 테이프 공을 만들어 선물로 줬다. 보물이 들었다면서 공의 배를 갈라 암소 모양 지우개를 꺼내준다(저건 내가 지난번에 사준 거잖아!). “고마워”라고 말은 했는데, “우리 딸 최고야, 정말 고마워!”라는 호들갑 ‘오버’가 안 나왔다. 엄마 내공이 부족하다.

선물이 하나 더 있다면서 한 손으로 어깨를 열 번 정도 누르더니 5분 마사지 완료란다. 학교 숙제로 나온 부모님을 위한 효도 빙고. 선택 항목이 9개나 되는데 나머지도 하는 둥 마는 둥이다. 벽을 보고 “감사합니다”라고 절을 하길래, “감사합니다 할 때는 엄마 눈 좀 마주치면 안 돼?”라고 잔소리를 보답으로 보냈다. 부모님이 받고 싶은 선물을 적는 칸이 있길래 ‘우리 딸이 쓴 손 편지’라고 쓰고 꼭 좀 부탁한다고 애교를 떨었다.

인스타그램 속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이 써준 편지를 스토리에 올리며 자랑한다. 한 친구는 #편지장인일세 라는 태그와 함께 아이가 한바닥이나 열심히 쓴 손 편지를 공유했다. 집에서 술을 즐기는 다른 동료는 오징어 술안주 3종 세트 사진과 함께 ‘역시 우리 딸이 나를 잘 안다’며 좋아했다.

아이들에게 사랑하는 마음만 주면 되는데,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엄마도 인간이다. 나도 정성껏 쓴 편지를 받고 자녀의 효심에 감동하며 울어보고 싶다. 지나가는 아이가 친구와 하는 말이 들렸다. “나는 선물 하나도 안 준비했어. 부모님께 내가 선물 아닌가?” 그 엄마는 얼마나 더 속상할지 자신을 위로해본다. 남편이 한 소리 한다. “지나가는 애 말도 맞는 말이잖아. 우리 애들은 선물을 주니 다행이다.”

자고 일어나니 나름의 선물을 준비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늦게나마 출근길에 문자를 보냈다. “정성 들어간 선물 정말 고마워. 사랑해요.” 항상 한 박자 늦는다. 느린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