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골프를 믿습니다. PGA투어와 이 투어의 선수들을 믿습니다. 이곳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이며 골프를 하기 가장 좋은 곳입니다. PGA투어는 올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겨내고 있습니다.”
페덱스컵을 받은 로리 매킬로이(31·북아일랜드)는 역대 어느 대회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가치를 설파하는 우승 소감을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 모너핸 PGA투어 커미셔너도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지난 1년간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가 주도하는 LIV 골프에 대항하는 수호자 역할을 해온 매킬로이의 승리는 PGA투어의 승리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매킬로이는 29일 미국 애틀랜타의 이스트 레이크 골프클럽(파70)에서 막을 내린 PGA투어 플레이오프 최종 3차 대회 투어 챔피언십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2개로 4타를 줄여 21언더파 263타를 기록하며 대역전승의 주인공이 됐다. 매킬로이는 공동 2위인 임성재와 스코티 셰플러(미국)를 1타 차로 제치고 2021-2022시즌 챔피언에게 돌아가는 페덱스컵과 함께 1800만달러(약 241억원)의 우승 보너스를 받았다. 이 대회 전까지 받았던 865만달러 시즌 상금의 두 배가 넘는다. 매킬로이는 3라운드까지 선두 셰플러에게 6타 뒤진 공동 2위였지만 마지막 라운드에서 투어챔피언십 사상 가장 큰 역전승을 일궜다.
매킬로이는 2016, 2019년에 이어 3년 주기로 세 번째 페덱스컵을 제패하며 두 번 우승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밀어내고 최다 우승 기록을 세웠다. 한 시즌 챔피언을 상징하는 페덱스컵은 4대 메이저 대회가 모두 끝나면 투어 전체가 맥이 빠지는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2007년 플레이오프 제도와 함께 도입됐다.
이날 매킬로이가 우승하자 우즈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매킬로이는 트리플 보기로 한 주를 시작하고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우승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매킬로이는 투어챔피언십 1라운드 1번홀에서 트리플 보기에 이어 2번홀에서 보기를 해 4타를 잃고 출발했다. 투어챔피언십은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성적에 따라 보너스 점수를 안고 출발한다. 마지막 라운드 전까지 정규 시즌과 플레이오프 모두 1위를 달린 셰플러가 10언더파로, 매킬로이는 4언더파(7위)로 6타 차 출발을 했는데 대회 시작 두 홀 만에 10타 차로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매킬로이는 “윈덤챔피언십에서 톰 킴(김주형)은 1라운드 1번홀에서 쿼드러플 보기를 하고도 결국 우승했다. 골프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나도 톰 킴처럼 해보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결국 믿기 어려운 역전극을 일군 매킬로이가 우승 확정 후 이날 3타를 잃고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셰플러 가족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하자, 셰플러의 아버지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충분히 우승할 만한 경기였다”고 했다.
매킬로이는 지난 1년간 PGA파와 LIV파로 갈린 골프계에서 PGA파의 ‘입’이자 ‘대표 선수’ 역할을 했다. 그는 PGA투어가 선수 유출을 막기 위해 대책 회의를 할 때마다 우즈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그동안 실력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던 매킬로이는 PGA투어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매킬로이는 최근 우즈와 합작회사 ‘TMRW 스포츠(Tomorrow Sports)’를 설립해 2024년부터 PGA투어와 함께 가상현실 골프리그도 출범시킨다. 3명씩 한 팀을 이뤄 대결하는 방식으로 2시간 동안 경기를 진행해 황금 시간에 TV 중계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매킬로이는 우즈와 함께 선수로도 나설 예정이다. ‘골프의 미래’란 구호와 함께 다양한 경기 방식을 도입한 LIV에 맞불을 놓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