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군용기 8대가 지난 6일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무단 진입했다. 117분간 이어도, 제주도, 마라도 등 남·동해 상공 카디즈를 휘저었다. 지난해 5월과 8월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어김없었다. 이번엔 공교롭게 현충일에 벌어져 스탈린의 남침 재가, 마오쩌둥의 군사 개입이라는 70여 년 전 국제전 성격의 6·25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방공식별구역(ADIZ·아디즈)은 영공 바깥에 설정한 구역이다. 영공에서 짧게는 수km, 멀게는 수백km 지점이다. 군사분계선(MDL) 남북으로 각각 2km의 비무장지대(DMZ)라는 완충지대를 두는 것과 비슷하다. 타국 군용기의 자국 영공 침범을 막기 위한 목적이다. 이에 상대국 아디즈에 들어갈 때는 미리 알려주는 게 관례다. 그런데 중·러는 이번을 포함해 2019년부터 계속 통보 없이 카디즈를 침범하고 있다. 한 예비역 공군 중장은 “한국을 무시하는 행태”라면서 “저들이 한반도 주변 유사시를 가정한 군사 훈련을 하는 것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했다.
중국 국방부는 이번 침범에 대해 “러시아와 연합 공중 전략 순찰을 한 것”이라고 했다. 왜 중·러는 남·서해부터 동해까지 한반도를 빙 돌며 비행 작전을 펴나?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싸우는 현 상황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한 전직 합참 차장은 “한·미·일 안보 협력에 대응한 전략적 도발”이라며 “한·미·일 대응 패턴과 수준을 파악하는 정보 수집 목적뿐 아니라 미국 주도로 설정된 카디즈를 무력화하며 역내 중·러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의도는 점점 노골화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에 보고된 자료를 보면, 중·러는 2021년 각각 70여 회 카디즈를 침범했다. 양국 연합으로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매년 1차례 넘어오다 지난해에는 2차례로 횟수를 늘렸다. 중·러 조종사들이 카디즈를 안방처럼 드나들며 비행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공군은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차디즈)에 가본 적이 없다.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해 카디즈 침범 문제를 언급하며 “한반도 유사시 중국 개입이 있을 텐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넘기기엔 너무 복잡하고 다면적이며, 대가가 너무 크고 위험이 너무 중대한 상황”이라고 했다. 진심 어린 전직 주한미군사령관의 조언이었다.
전례에 비춰봤을 때 중·러 폭격기는 올해 또 한 번 카디즈를 연합 공중 훈련의 장으로 삼을 것이다. 최근 심해지는 대만 아디즈 침범과도 연동돼 있을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자위권 차원의 비례성 원칙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차디즈 진입 카드를 테이블에 올려놓자는 것이다. 우리는 사전 통보 관례를 준수하면 된다. 저들의 카디즈 무단 진입에 대한 항의 명분은 더욱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