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장 선거가 점점 혼탁해지는 모양새다. 원래 8일 치르기로 했던 선거는 법원이 불공정·불투명한 절차를 이유로 제동을 걸자 일단 연기됐다가, 협회가 23일 강행할 방침을 밝혔으나 이번엔 선거 전반을 관리하는 선거운영위원회 위원들이 전원 사퇴하면서 일정이 백지화됐다.
축구협회 선거운영위는 10일 “(선거 금지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결정 취지를 존중하면서 선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후보자들 의견을 모아 진행하려 했지만 악의적 비방만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위원 전원 사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축구협회는 23일 투표를 취소하고 다시 절차를 밟기로 했다. 운영위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향후 축구계에 더 성숙한 선거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축구협회장 선거는 원래 지난 8일 예정됐다. 하지만 허정무 후보가 선거 절차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법원에 선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선거 하루 전(7일)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선거가 1차 취소됐다. 그러자 협회가 23일로 일정을 다시 잡았는데, 허 후보와 신문선 후보 측이 “동의하지 않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자격 정지 이상 중징계 요청을 받은 정몽규 회장이 후보 자격을 잃기 전에 선거를 하려고 협회가 서두른다”고 반발했다. 허 후보 측은 선거운영위가 ‘친(親)정몽규’ 인사들로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축구협회는 선거 전 운영위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법원은 ‘협회 외부 위원이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했고, 협회는 가처분 인용 결정 하루 전 명단을 법원에 냈다. 명단을 보면 선거운영위는 언론인 1명, 교수 3명, 변호사 4명 등 8명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이 중엔 건설·부동산 분야 전문 변호사들이 포함됐다. 이에 “(건설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규 후보와 가까운 이들이 위원회에 포함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선거운영위는 이에 “이번 선거와 관련된 모든 절차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행했다”며 “법원도 선거운영위 선정 절차나 구성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선거 기간 여러 차례 근거 없는 비난과 항의가 제기됐다”면서도 일단 물러나기로 했다. 협회는 12일 선거인단을 추첨한 다음 23일 선거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운영위원들이 사퇴하면서 2차 취소를 결정했다. 협회는 “선거운영위 재구성 문제를 포함해 선거 전반적 사항을 논의해 다음 주 중 알리겠다”고 전했다.
잡음이 끊이지 않자 후보들은 “선거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자”고 제안했다. 축구협회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신 후보는 “축구협회가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 중 규모와 관심도가 가장 큰 데도 선거 행정은 믿기 힘들 정도로 ‘깜깜이’였다”며 “선거를 중앙선관위에 맡기고 대한체육회장 선거처럼 후보자 공개 토론도 하자”고 했다. 허 후보 측은 “선거운영위가 해체돼서 이제야 선거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중앙선관위에 위탁하거나, 새 선거운영위에 각 후보들이 2명씩 위원을 추천해서 넣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정몽규 후보는 “일부 후보의 근거 없는 비난과 항의로 파행을 거듭하던 선거가 급기야 두 번째 연기까지 됐다”며 “많은 축구인이 협회 기능이 멈출 걸 걱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운영위 구성은 제가 직무에서 배제된 이후 이사회에서 독립적으로 결의한 사항이다. 운영에 관여할 수 없음이 명백한데도 마치 연관이 있는 것처럼 악의적으로 비방했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는 “중앙선관위에 선거 위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면서도 “(투표 이외 다른 선거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선거운영위를 서둘러서 재구성하고 선거 계획을 수립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