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은 전통 명절 단오였다. 강릉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강릉 단오제를 찾은 관광객들은 감자전과 수제 맥주 그리고 커피를 동시에 즐기며 강릉이 전통과 재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강릉 단오제는 지역 주민과 단체들의 합심으로 치러진다. 시내에서 벌어지는 길놀이는 독특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을 간 아이디어 경쟁의 장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지정 2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는 강릉 농촌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계절 근로자까지 참여시키며 변화하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고민과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강릉을 찾는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교통수단은 기차다. 최고 속도 시속 250km의 KTX-이음을 이용하면 서울역에서 2시간, 청량리역에서 90분 만에 강릉 시내에 있는 강릉역에 도착한다. 단오가 아니더라도 강릉역은 연일 사람들로 북적인다. 2023년 8178명, 2024년 8450명을 기록하던 하루 평균 이용객은 2025년 1분기에는 1만115명으로 급증했다. 당초 강릉선 건설을 위해 2014년 시행했던 수요 예측에 따르면 2018년 9738명을 기록한 이후 2021년 8614명, 2026년에는 8272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당초 예측과 반대로 강릉역 이용객이 점점 늘어나 하루 1만명대에 도달했다.
2011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 평창과 강릉이 선정되면서 정부는 인천공항에서 강릉을 직접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건설했다. 당초 정부 안은 시내 외곽에 역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강릉은 올림픽 경기장과 인접한 기존 강릉역까지 고속철도가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 강릉역을 신설하고 도심을 가로지르던 철길을 2.6㎞의 터널로 지하화한다는 구상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5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했다. 평소라면 어림없을 주장이었지만 동계 올림픽이라는 상황은 강릉의 손을 들어주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이용객으로 넘쳐나는 강릉역은 누구의 판단이 옳았는지를 보여준다.
고속철도를 통해 수도권과 가까워진 강릉에 올해 초 새로운 철도 노선이 개통됐다. 강릉과 부산을 연결하는 동해선이다. 고속열차가 아닌 최고 시속 150km의 ITX-마음이 투입되면서 5시간이나 걸린다. 긴 운행 시간 때문에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에서 동해선을 이용해 강릉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거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운행을 시작하자 동해선은 표를 구하기 어려운 인기 노선이 됐다. 2028년에 양양, 속초까지 철도로 이어지면 강릉을 찾는 사람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년 전 강릉은 쇠락하는 관광 도시였다. 숙박 시설들은 노후됐고 경포대를 비롯한 해수욕장들은 모래사장 유실과 잇단 냉수대 발생으로 피서지로서의 영광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새로운 시설과 볼거리를 더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강릉은 반대로 나갔다. 당시 경포 해수욕장에는 1970년대 들어선 낡은 단층 여인숙과 상업 시설들이 빼곡했다. 탁 트인 동해 바다를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풍경은 무너질 것 같은 건물들의 뒷모습이었다. 강릉은 침체의 시기를 기회로 삼았다. 관광객 감소로 어려움을 겪던 업소들이 시 당국의 설득과 보상을 받아들이면서 철거가 시작됐다. 2008년 바다를 가리던 모든 노후 건축물이 철거되자 경포를 찾은 관광객들은 탁 트인 동해 바다를 볼 수 있게 됐다. 억지로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통해 장점을 제대로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되었다.
2000년대 초반, 강릉 외진 산속과 바닷가에 몇몇 커피집이 들어섰다. 독특한 커피를 선호하는 마니아들만이 찾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가 인터넷을 통해 조용히 알려지면서 강릉은 다양함을 갖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을 위해 강릉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해변의 횟집과 노래방들은 커피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에 대해 갸우뚱하던 주민들도 좋은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이렇게 커피집들은 도시의 풍경을, 그리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문 닫은 막걸리 양조장에 수제 맥주집도 들어섰다. 강릉 창포와 쌀이 들어간 맥주는 비쌌지만 사람들에게 로컬 맥주란 무엇인지를 알게 해줬다.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꼬막집도 눈에 띄었다. 고등어가 잡히지 않는 안동 간고등어가 유명해진 것처럼 강릉에서 나지 않는 꼬막도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흔히 강릉의 변화는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이루어진 대규모 투자의 결과로 인식한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신기하고 낯선 것이 만들어지면 많은 사람이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물은 전국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출렁다리와 케이블카다. 이런 시설들은 시간이 지나면 관심에서 멀어지고 유지 비용만 많이 드는 애물단지가 된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만 접할 수 있는 매력을 보존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지역이 자신의 전통을 지켜가고 있으며 자부심을 내세운다. 하지만 전통 그 자체로는 매력이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전통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의 변화를 위해서는 적절한 인프라의 확충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시도와 외지인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도 중요하다. 강릉을 찾도록 만드는 커피는 외지인들에 의해 시작됐고 다양한 문화 활동도 그냥 강릉이 좋아 정착한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들의 낯선 시도를 긍정해 주는 마음이 있었기에 강릉은 매력적이고 새로운 것이 계속 등장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나의 눈높이가 아닌 상대의 눈높이와 취향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유연성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몰리게 된다. 지역 문제에 대한 답은 인프라와 더불어 마음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