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 이중근 회장이 고향 사람한테 감사 표시를 하고 싶다기에 긴가민가했는데, 통장을 보고 깜짝 놀라부렀지.”
전남 순천시 서면 운평리에 사는 장찬모(80)씨는 지난달 말 자신의 통장에 9020만원이 찍힌 것을 보고 놀랐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었다. 이중근(82) 부영그룹 창업회장이 사비를 털어 고향 마을 운평리 사람들에게 많게는 1억원 가까운 현금을 나눠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최근 마을 사람들은 “이 회장이 고향에 골든벨을 울렸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했다.
27일 마을 주민과 부영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 사이에 운평리 주민 280여 가구에 세금을 공제하고 적게는 2600만원부터 많게는 9020만원까지 개인 통장으로 입금했다. 부영 측은 “회사에도 전혀 알리지 않고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며 “2년 전에는 직계 아닌 친·인척에게 많게는 10억원을 전했고, 군 복무를 함께 한 전우에게도 현금을 나눠줬다”고 밝혔다. 이렇게 지금까지 이 회장이 주변에 직접 지급한 돈이 1400억원 정도 된다.
이 회장은 운평리 죽동마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서면 동산초등학교와 순천중학교, 순천고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건설업에 투신해 1983년 부영을 세웠다. 고향 사랑이 남달라 1991년 순천에 부영초등학교를 세우는 등 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많이 했지만, 이처럼 현금을 직접 나눠줄 것이라고는 고향 사람들도 전혀 생각 못 한 일이었다.
이 회장이 이번 고향 사람들에게 ‘현금 나눔’을 결심한 것은 두 달 전쯤이라고 한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을 잘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며 운평리 여섯 마을 대표 12명에게 만남을 청했다. 이 자리에서 액수는 알리지 않고 직접 현금을 지급하고 싶다는 뜻을 알렸다. 마을 주민들이 회의 끝에 마을 실거주 기간에 따라 5등급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들이 중심이 돼 마을 사람들에게 이 회장의 기부 의사를 밝히고, 가구별로 통장 번호를 걷어 갔다. 지금까지는 동창이나 친인척에게 개별적으로 돈을 전달했지만, 이번에는 여섯 마을 대표들을 만나 고향 마을 전체에 현금을 전하면서 지역사회에 이런 사실이 퍼졌다. 죽동마을 정현호(70)씨는 “고향 어른이 고향을 찾아와 큰 선물을 한 것 같다”며 “뜻밖의 큰돈이라 너무 고맙고, 농사짓는 데 요긴하게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고향 사람들뿐 아니라 생존해 있는 동산초 남자 동창생에게 1억원씩 줬고, 초등학교 여자 동창들에게도 돈을 지급하기 위해 최근 동창 명부를 파악했다고 한다. 또 순천중학교 동창생들에게도 1억원씩 지급했고, 순천고 동창에게는 5000만원씩 전달했다. 순천중·고 동창회 관계자는 “현금을 받은 동창생만 80여 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전에 고향 사람과 동창뿐 아니라 군 복무를 함께 한 전우들, 평소 어려움을 호소하는 주변 이웃에게도 현금을 지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영 관계자는 “사비로 지금까지 기부한 선물 세트와 책 등을 합치면, 24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현재 라오스 출장 중 이런 일이 알려진 것을 알게 된 이 회장은 회사 측에 “공개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는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회장에게 보답하기 위해 공적비 건립을 추진하기로 했다. 자신들이 받은 금액의 1%를 성금으로 내는 것을 추진 중이다. 공적비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은 장찬모씨는 “우리가 도와준 일도 없는데 큰 선물을 받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공적비도 이 회장 모르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알려지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이 회장은 그동안 공개적으로도 다양한 기부 활동을 해왔다. 최근에도 자신이 복무한 공군에 “복무 당시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게 미안했다”며 10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부영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물품을 포함해 1조1000억원에 이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