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가 목표로 한 세금 수입이 얼마나 달성됐는지를 나타내는 ‘세수 진도율’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낮아졌고, 지난해와의 격차도 매달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대규모 세수 펑크에도 불구하고 적자 국채를 발행해 부족한 세입을 메꾸는 방안은 추진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신 올해 예산에 편성됐지만 쓸 필요가 없게 된 예산 불용액을 끌어모아 모자란 예산을 보충하기로 했다.

1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1~3월 기준 세입 진도율은 23.2%로 지난해(28%)와 비교해 4.7%포인트 낮았다. 지난해 1분기에는 세금이 연간 목표치의 28%만큼 걷혔는데 올해는 23.2%밖에 안 걷혔다는 뜻이다. 세수 부족으로 지난해와의 세수 진도율 격차는 1월 0.9%포인트, 2월 3.0%포인트 등으로 커지고 있다. 올 1분기 세수는 145조4000억원으로, 작년 1분기(170조4000억원)보다 25조원 적었다. 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을 400조5000억원으로 예상했지만 올해 남은 9개월간 지난해와 같은 세수가 들어와도 28조6000억원의 결손이 발생하게 된다.

◇정부, 추경 없이 불용액 끌어다 메꾼다

세수 펑크가 발생할 때 정부가 자주 쓰는 방법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이다. 세입 감소분에 맞춰 지출(세출)을 줄이거나 지출을 유지하면서 세수 부족분을 적자 국채 발행으로 메꾸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추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4일 “경기 문제와 자산시장 부진, 기업의 영업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어우러져 세수 부족 상태가 단기간 내 해소될 것 같진 않다”면서도 “현재 추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부족한 세수를 메꾸기 위해 적자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는 것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의 철학에 어긋나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카드다. 그렇다고 반도체·2차전지·전기차 등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산업 육성을 위해 낮춰주기로 한 세금(투자 세액공제)을 철회할 수도 없다.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올해 불용이 예상되는 사업을 정리해 최대한 다른 사업으로 예산을 전용하는 것이다. 현재 기재부는 불용이 예상되는 사업 목록을 작성하는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관건은 불용액 발생 규모다. 작년의 경우 12조9000억원의 불용액이 발생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난해는 불용액이 많이 나온 편이고 보통 7조~8조원 정도 발생한다”며 “이밖에 지난해 안 쓰고 남은 세계잉여금과 각종 정부 기금 등에서 발생하는 여유 재원을 예산으로 끌어다 쓸 수 있다”고 했다.

◇”국회에 추경안 제출하면 정치적 예산 끼어들 것”

불용액을 모아서 쓰는 방식은 추경을 편성해 세입을 줄이는 것과 실질적인 효과는 같다. 차이점은 국회를 거치는지다. 추경은 예산안을 변경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불용액을 이용한 지출 구조조정은 국회를 거칠 필요가 없다.

정부는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할 경우 여야가 지출을 줄이기는커녕 내년 총선을 위해 예산을 오히려 늘릴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세입감액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해도 여야가 지역화폐 같은 선심성 예산을 대폭 늘리면 결국 적자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정치적인 예산이 끼어들게 하는 것보다는 집행률이 저조해 진행이 곤란한 사업들을 정리하고 될 만한 사업으로 몰아줘 내실을 기하는 게 낫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올해 초부터 30조원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입 경정

국회에서 승인받은 예산안을 중간에 바꾸는 것을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라고 한다. 이때 원래 예산안보다 세입이 부족하거나 넘쳐 세입 예산안을 바꾸는 것을 세입 경정이라고 한다. 세입이 예상보다 적을 경우 그에 맞춰 지출 계획을 줄일 수도 있고, 지출을 유지하면서 세수 부족분을 적자 국채 발행으로 충당할 수도 있다.

☞예산 불용액

예산안에 편성돼 있지만 재정 사업이 민자 사업으로 전환되거나, 집행률이 저조해 사업 진행이 어렵다고 정부가 판단해 쓸 필요가 없게 된 돈을 말한다. 작년 불용액은 12조9000억원이었다. 예산 불용액은 다음 해 예산으로 넘길 수도 있고, 올해 진행되는 다른 사업으로 전용해 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