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앞두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하는 모습./대통령실 제공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1년을 이틀 앞둔 8일 공개한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위한 대통령의 약속’ 영상에서 한미 동맹 강화, 탈원전 폐기, 노동 개혁 추진을 통해 “지난 1년간 비정상을 정상화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공언했던 연금·노동·교육 개혁 등 ‘3대 개혁’은 거야(巨野)의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야당은 오히려 검수완박법, 양곡관리법 등 다수 의석을 기반으로 윤석열 정부와 충돌했다. 정권은 교체됐지만 지난 1년 동안 정치와 정책 주도권은 여전히 야당에 있었다. 결국 ‘윤석열식 개혁’의 성패는 내년 총선에 달렸다는 평가다.

윤 대통령이 주로 속도를 낸 분야는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외교와 행정 분야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미국을 국빈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 취임 11일 만인 작년 5월 서울에서 첫 한미 정상회담을 한 후 1년 만에 세 번의 정상회담을 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정상화에도 나섰다. 지난 3월 ‘제삼자 변제’ 방식의 정부 해법을 발표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정상회담을 통해 한일 ‘셔틀 외교(상호 방문)’를 복원했다. 그로부터 52일 만인 지난 7일 방한한 기시다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 동맹 강화와 한일 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미·일 협력 강화는 안보는 물론 공급망·기술 협력 강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다”고 했다.

미국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윤 대통령은 이 밖에도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 복원에 나섰다. 화물연대 사태 때는 업무개시 명령을 발동해 운송 거부 사태를 끝냈고, 올 들어서는 이른바 ‘건폭(건설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고 노동계 고용 세습 근절, 노동시장 이중 구조 해소 등을 추진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정치·경제·사회 등 전 분야에 걸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면서 전면에 이른바 3대(연금·노동·교육) 개혁을 내세웠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해 이권 카르텔과 기득권을 깨나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과제는 대부분 과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의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0일 국회에서 취임식을 마친 후 차량에 탑승해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연금 개혁의 경우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지만,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들이 의견을 모으지 못해 개혁 초안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연금 개혁을 위해선 국민 동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에선 여론을 의식해 “정부가 최종안을 만들라”며 공을 넘기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노동 개혁은 정부가 지난 7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시키고 근로시간 제도 개편, 성과 중심의 임금 체계 개편 등의 밑그림을 그렸지만, 야당과 노동계는 “개악”이라며 정부 퇴진 운동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노조의 회계 처리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도 “노조 탄압법”이란 야당 반대에 국회 상임위 캐비닛에서 잠자고 있다. 교육 개혁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 전반 분야에서 여야가 의견 충돌을 하고 있다. 야당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지방재정교부금을 대학에 지원하자는 정부안을 반대하고 있고, 교육감 직선제 폐지 등을 놓고도 전선이 형성돼 있다.

정부의 중점 처리 법안도 줄줄이 발목 잡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정 준칙(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제한)을 법제화하는 내용이 담긴 국가재정법 개정안이다. 민주당은 정부가 구매하는 재화·서비스의 최고 10%를 사회적 기업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회적경제법과 재정 준칙을 함께 처리해야 한다면서 재정 준칙 법제화를 막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며 정부가 발의한 지방자치분권특별법은 지난 3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여야 이견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 2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청사로 출근하며기자들과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을 하고 있다. 윤대통령이 취임후 의욕을 보인 도어스테핑은 2022년 11월 18일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뉴스1

오히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간호사법 등 윤석열 정부가 반대하거나 절충하자는 법안을 국회에서 일방 처리했다. 윤 대통령은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는 여당 반대에도 민주당이 양곡관리법을 일방 처리하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간호사법도 거부권 행사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간호사법 논의 과정에서 중재안을 내놨지만,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성패는 내년 22대 총선 결과에 달렸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여권 관계자는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20~40대는 주로 연금 개혁을, 50대 이상에선 노동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결국 이런 ‘개혁’을 앞세워 총선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또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주 최장 69시간 근로제 논란에서 보듯 윤석열 정부의 국민과의 소통 방식도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왜 이 정책을 지금 추진하는지에 대국민 설명과 설득이 부족해 논란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