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이 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관 옆으로 걸어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을 앞둔 지난달 말, 교황 선거 ‘콘클라베’를 둘러싼 소동이 있었다. 영국 런던의 고급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연루돼 2년 전 바티칸 법원에서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받은 조반니 안젤로 베추(77·이탈리아) 추기경이 콘클라베에 참석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베추는 한때 교황청 2인자인 궁무처장, 시성성 장관을 역임하며 ‘바티칸 실세’로 불렸던 인물이다. 사건을 계기로 추기경 직만 유지되고 특권은 전부 박탈당했고,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그런 그가 교황의 장례식으로 향하며 돌연 “나의 콘클라베 참여를 막을 규정은 없다”고 했다. 이어 그의 지지자들도 “교황이 그의 참정권을 박탈했다는 내용이 적힌 공식 문서가 없다”며 베추의 콘클라베 참여 정당성을 설파했다.

바티칸은 즉시 혼란에 휩싸였다. 원칙 상 콘클라베에 참가하는 추기경은 누구나 유권자이면서 동시에 교황 후보. 그가 콘클라베에 등장하면 교황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그를 추종하는 세력도 있는 만큼 그가 등장만 해도 콘클라베에 끼칠 영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베추의 영향을 받는 콘클라베 과정과 결과를 납득할 수 있냐는 의문과 반박 증거가 쏟아졌다.

특히 비위로 인해 ‘최초로 바티칸 형사 법정에 선 추기경’이라는 오명을 얻었는 데도 당당한 그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 컸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심판의 목소리가 두려웠던 것일까. 콘클라베 등장 선언 일주일 뒤 베추는 변호사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따른다” “교회의 선익(善益)을 가슴 깊이 생각한다”면서 교황 선거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의 무고(無辜)는 확실하다”는 문장이 끝에 덧붙기는 했다. 그럼에도 그의 결단이 놀라웠던 이유는 무엇일까. 공동선(善)을 앞세우며 야욕을 접는 결단은 세속 정치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광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날 추기경단은 “콘클라베의 친교와 평안에 기여”했다며 베추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세(勢)가 있다. 콘클라베 정치도 상당히 치열하다고 한다. 종교계라고 무결하리라는 생각에 빠진 것도 아니지만, 일주일의 소동을 보면서 세상 어딘가에는 사리사욕보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고 당연한 세계가 남아있다는 일종의 안도감이 들었다.

초국적 관심 속에 콘클라베의 막이 오른다. 전 세계에 흩어진 14억 신도를 이끄는 영적 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점에서 관심의 규모는 놀랍지 않다. 하지만 진정 대중의 마음을 끄는 것은, 추기경 사회가 어떤 이념 갈등 앞에서도 한마음으로 지키려고 하는 ‘바티칸의 품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