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연아, 친구처럼 동생처럼 니가 곁에 있어 든든했는데 뭐가 그리 바빠서 서둘러 갔느냐.”(임권택 감독)
“언니의 가오, 언니의 목소리 잊지 않을게요. 하늘에서 만나면 같이 영화 해요!”(배우 문소리)
11일 삼성서울병원에서 배우 강수연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식장에는 ‘별보다 아름다운 별, 안녕히’라고 적혀 있었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믿기지 않고 믿을 수도 없는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처음 만난 뒤 33년간 아버지와 딸처럼 지내왔는데 어떻게 나보다 먼저 떠날 수 있나요? 스물한 살에 ‘월드 스타’라는 왕관을 쓰고 멍에를 지고 당신은 참 힘들게 살았습니다. 우리 곁을 떠났어도 천상의 별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강수연이 걸어온 길’ 영상이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유지태는 “모든 게 영화 속 한 장면이었으면 좋겠다”고 애도했다. 무명 시절 영화 ‘송어’(1999)를 함께 찍었다는 배우 설경구는 “막내까지 챙기며 보여주신 애정과 배려, 잊지 않겠다”며 “당신은 우리 배우들의 진정한 스타였다”고 했다. 영결식을 생중계한 유튜브에는 “수연님, 그리울 겁니다” “떠난 후에야 당신이 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겨놓으신 작품들 보며 추억하겠습니다” 같은 추모의 글이 달렸다.
1980~90년대에는 강수연이 곧 한국영화였다.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1987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한국 영화계의 첫 ‘월드 스타’였다.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에 처한 2015~17년에는 공동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강수연은 넷플릭스 영화 ‘정이’로 9년 만에 관객을 만날 기대에 부풀었지만 복귀작은 유작이 되고 말았다. 연상호 감독은 “강수연 선배님이 출연해 든든한 ‘빽’이 생긴 것처럼 기뻤는데, 이제 작업실로 돌아가 선배님의 마지막 영화를 다듬어야 한다”며 “제가 선배님의 든든한 ‘빽’이 돼 드리겠다”고 했다.
강수연은 지난 5일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치료를 받다가 7일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이날 화장 후 용인추모공원에서 영면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