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친구가 된 날

마일리 도프렌 지음 | 이안 드 애스 그림 | 이경혜 옮김 | 고래이야기 | 28쪽 | 1만7000원

아이는 밤이 무섭다. 낮의 세상은 환하고 알록달록했는데. 밤엔 모든 게 변한다. 가지를 살랑이던 나무들은 무시무시한 거인이 된다. 당장이라도 긴 팔을 뻗어 집을 에워쌀 듯하다. 새까만 밤의 잉크는 세상에 넘쳐흐르더니, 집 복도를 기웃대다 방문 밑으로 기어 들어온다. 이제 곧 파도치듯 솟구쳐 제 침대를 덮쳐올 것만 같다.

/고래이야기

밤의 어둠이 두려운 아이 마음을 눈치챈 엄마가 말한다. “밤한테도 무섭다고 말해 볼래?” 아이가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어둠을 몰아내려 애쓸 때, 뜻밖에도 밤이 말을 걸어왔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해 보렴. 나는 그저 활짝 펼쳐진 옷감, 네가 덧칠해주면 다 다른 얼굴과 표정을 하게 될걸!”

아이는 그 말을 따라 용기를 낸다. 제 방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밤의 까만색은 어디나 똑같은 게 아니었다. 지붕 위로 펼쳐진 하늘은 녹색을 띤 짙은 파랑. 가로등과 자동차, 달과 별들의 빛을 받아 나무도 집도, 하늘을 나는 부엉이도 서로 다른 색으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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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어둠뿐이 아니다. 커가는 동안 아이는 몇 번이나 두려운 어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엄마 품으로 숨어들거나, 이불을 뒤집어쓴 채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 혼자 건너야 할 큰길, 반 친구들 앞에서 읽어야 할 시, 할아버지 집의 거미들…. 용기를 내 말을 걸어보면, 그렇게 무서워 보이던 모든 것이 생각보다 이겨낼 만해질지도 모른다.

붉은 노을이 질 때, 밤과 친구가 된 아이는 힘껏 팔을 휘둘러 밤의 장막을 펼친다. 이제 밤은 별빛으로 수놓은 아이의 드레스, 아이가 타고 세상으로 나아갈 배에 순풍을 받아줄 돛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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