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내 내리친 ‘탈원전 대못’은 생각보다 깊숙이 박혀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탈원전 폐기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취임 직후 당장 착수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다.
공약에 포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탈원전 정책으로 사업이 올스톱되면서 기존에 거쳤던 절차부터 또 밟아야 한다. 신한울 3·4호기는 부지가 확보되고 발전사업 허가까지 난 상태였다. 하지만 현 정부는 최상위 국가 에너지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 및 에기본에 근거해 발전설비 건설 계획을 세우는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에서 신한울 3·4호기를 제외해 공사를 막았다. 공사를 진행하려면 에기본과 전력계획에 다시 집어넣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올 연말쯤 마무리될 전망이다. 환경영향평가 관문도 다시 통과해야 한다. 2016년 평가가 끝났지만 지난해 8월 유효기간 5년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건설 허가 등 그밖에 남아 있는 절차를 거치다 보면 공사는 2025년쯤에나 시작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이렇게 되면 상업 운전은 윤석열 정부 임기 후 가능하다.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 가동을 연장하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계속 운전을 위해서는 안전성 평가와 주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야 하는데, 최소 4~5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고리 2호기 등 앞으로 5년 안에 수명이 끝나는 원전 6기가 새 정부 임기 내에 재가동될지 여부가 불투명한 것이다.
현실적 여건상 새 정부가 임기 초 원전 분야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초반부터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과속하다가는 스스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 탈원전 추진 과정에서 각종 무리수를 두다 국민적 비판을 샀던 문재인 정부의 지난 5년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탈원전은 국가 중대 에너지 정책을 바꾸는 것인 만큼 에기본을 수정한 다음 전력계획에 반영하고 구체적 일정표를 만드는 게 맞는 순서다. 하지만 정부는 임기 첫해인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로드맵’부터 채택했다. 국회 논의나 전문가 토론 같은 절차를 생략하고 정해 놓은 결론대로 탈원전을 공식화하는 조치부터 한 것이다. 월성 1호기는 언제 폐로시키느냐는 대통령 한마디에 장관이 “너 죽을래”라고 부하 직원을 다그치고 이후 실무자가 경제성 평가를 왜곡해 폐쇄했다.
탈원전은 일차적으로 전국을 태양광 패널로 뒤덮겠다는 비현실적 목표가 문제였지만 정부는 이를 서둘러 추진하기 위해 기본적 절차를 건너뛰고 때로는 편법까지 동원하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새 정부가 탈원전 폐기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단축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흔드는 것일 경우 논란을 부르고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다.
안보와 경제성·환경성을 두루 고려해야 할 에너지 정책을 철저히 이념 속에서 다룬 것도 현 정부가 비판받는 대목이다. 현실을 무시한 채 원전을 배척하다 보니 2050년까지 국내 전력 수요의 71%를 재생에너지로 채우겠다는 무모한 계획이 나온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에너지 정책의 새판을 짜면서 재생에너지를 무조건 배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서는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된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뿐 아니라 재생에너지도 필요하다. 그동안 속도 조절이 안 된 게 문제였던 것이다. ‘5년짜리’가 아니라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조화를 이룬 중장기적 에너지 계획을 도출해야 한다. 5년간 깊게 박힌 탈원전 대못을 빼는 데에는 시간과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욕속부달(欲速不達). 너무 서두르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