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기업에서 첫 여성 사장이 되는 것은 기술 기업에서 마케터로 기여하는 방법을 찾는 일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다니고 있는 여성 후배들 모두 자신감을 갖고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나가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사장인 이영희 DX부문(스마트폰·TV·가전) 글로벌마케팅실장(사장)은 17일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서 ‘삼성 최초의 여성 사장이 된 비결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사장은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나의 강점을 늘 개발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민첩하게 반응하며 늘 팀원과 성공을 같이 만들어 나가려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다. 이어 “기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로 처음 삼성전자에 들어왔고 마케터로서 기술 전문가들과 편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까지 올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다”며 “여성으로 성공하는 건 그만큼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국적 화장품 기업 로레알 출신 마케팅 전문가인 그는 2007년 삼성에 합류해 갤럭시 스마트폰의 글로벌 마케팅을 이끌어왔다. 갤럭시의 세계적 성공과 삼성전자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지난해 말 2023년 정기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창사 53년 만에 나온 첫 여성 사장이었다.
◇미래를 위한 마케팅, 고객 중심
이 사장은 이날 ‘마케팅 역할 재정의’라는 주제로 열띤 강연을 펼쳤다. 이 사장은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산업을 바꾸고 있고, 디지털 전환과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객과 시장 동향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과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며 “마케터들이 길을 잃으면 고객 또한 흥미를 잃고 기업 성장도 중단될 수 있기 때문에 마케팅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미래 마케팅의 핵심은 고객 중심이라고 했다. 그는 “마케팅은 고객과의 관계를 생애 주기를 통해 진화시켜 나가는 것”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똑똑하고 브랜드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진 고객의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삼성 글로벌마케팅실 안에는 고객 경험을 확장하고 개선하는 전담팀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 사장은 “최근 2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 고객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상당수가 어린 자녀를 양육하고 동시에 부모님을 돌보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 같은 고객의 페인포인트(고충)를 발견하고 제품과 서비스로 해결할 설루션을 찾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했다.
◇MZ 가치 이해해야, 사회적 책임 강조
이 사장은 MZ 세대 고객의 가치와 행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사장은 “삼성은 변화하는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2021년 10국을 대표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 모인 미래세대연구소를 설립했다”며 “삼성의 전략과 기획, 마케팅이 다음 세대의 의견과 가치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성별, 지역, 인종 같은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신념, 문화로 그룹화된다고 했다.
MZ 세대의 주요 가치관으로는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꼽았다. 연구 결과 이들에게 이런 가치는 가격과 품질만큼 중시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자신이 사용하는 브랜드를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시킨다”면서 “이 때문에 마케팅과 브랜딩은 매출을 올리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의미있게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삼성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고객들이 지속 가능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비전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기업이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상업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면서 “올바른 마케팅 접근을 통해 사람들이 잠재력을 발휘하고 지구를 보호하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걸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