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아사히신문의 오보(誤報) 사과를 다룬 논픽션 ‘아사히신문 정치부’가 일본 서점가에서 출간 3개월 만에 4만 부 이상 팔리며 논픽션 부문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는 당시 오보 기사를 책임지고 출고한 사메지마 히로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 그는 “아사히신문의 신뢰가 깨지자 3년에 100만 부씩 부수가 줄었다”고 썼다. 2014년까지만 해도 약 760만 부였던 부수는 올 2월 현재 434만 부로 급락했다. ‘일본 지식인의 상징’으로 불려왔던 아사히신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2014년 9월 아사히신문의 기무라 다다카즈(木村伊量) 사장은 종군 위안부 관련한 일부 보도와 ‘요시다 조서(調書)’ 사건에 대해 사과하며 사퇴했다. 사메지마는 특히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 소장이 남긴 기록과 관련해 아사히신문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상세히 기록했다.
아사히신문은 요시다 소장이 남긴 비공개 문서를 3년 만에 단독 입수, 2014년 5월에 특종 보도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 직원의 90%인 650명이 소장의 ‘근처 대기’ 명령을 위반하고 안전한 지역인 원전 2호기로 철수했다”는 내용으로 큰 파문이 일었다. 하지만 아사히신문 기사 중 ‘명령을 위반하고’는 사실이 아니었다. 요시 소장이 남긴 원문은 ‘근처에서 대기하라는 소장의 명령이 직원들에게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였는데 핵심적인 내용이 잘못 전달된 것이다.
당시 이 기사 출고 데스크였던 사메지마는 특종 보도보다 후속 대응이 문제였다고 이 책에서 지적했다. 첫 보도 후 편집국에서 “명령을 몰라서 철수한 인원이 있을 가능성”을 문제 제기하며 이를 반영한 후속 보도를 준비했다. 당시 아사히 신문은 사장, 임원, 편집국장 등이 모두 정치부 출신이었는데, 기무라 사장이 “대단한 특종”이라고 흥분하자 이와 관련한 후속 보도를 연기했다고 했다.
저자는 더 큰 문제는 문건을 입수한 취재기자를 징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직원이) 4100명이 넘는 아사히신문이지만 80%는 조직 내 출세만 바라는 관료형이고, 10~20%만 날 선 취재를 했는데 당시 취재기자 징계가 이후 취재 위축을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아사히신문 내부의 권력 투쟁도 등장한다. 정치부 출신인 기무라 당시 사장이 여론 탓에 사퇴하면서 내부 영향력 유지를 위해 사내 기반이 약했던 오사카 본사의 사회부 출신 와타나베 마사타카 임원을 사장으로 발탁했다. 하지만 와타나베 후임 사장은 이후 사회부 출신을 주로 발탁, 정치부 라인을 밀어내 버렸다고 주장했다. 또 오보 사건으로 기무라 사장이 외부 여론에 밀릴 때 아사히신문 사회부의 일부 기자들이 SNS를 통해 비판 여론에 불을 지폈다고도 했다. 이 책이 일본 사회에서 관심을 모으는 가운데 아사히신문은 조만간 대규모 명예 퇴직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건전한 민주주의 실현에 꼭 필요한 저널리즘을 맡는 신문사로서 위축됨 없이 공정하고 정확한 사실을 추구하는 취재를 거듭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사업 구조 전환을 진행하면서 독자의 신뢰에 걸맞는 유용한 정보를 전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