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에 지난 22일 원포인트 인사가 있었다. 1급 다자외교조정관에 박용민(56) 전 일본 센다이총영사가 임명됐다. 박 조정관은 노무현 정부 때 이른바 ‘자주파·동맹파’ 논란에 얽힌 외교관 중 하나다. 2004년 북미3과 차석이었던 그는 과장 등과 술자리에서 당시 청와대 386인사들의 대미(對美)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동맹파’ 꼬리표가 붙었다. 누군가 이 사석 대화 내용을 청와대에 투서해 ‘자주파’의 타깃이 됐다.
십 수 년 전 일이지만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그는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센다이총영사로 발령이 났다. 중요하지 않은 공관은 없다. 그러나 이미 다른 나라 대사와 본부 국장직을 마친 그의 센다이행 발령에 “어째서?”라는 반응이 나왔다. 특히 당시 댓글 조작범인 ‘드루킹’이 공범자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제안에 ‘그런 데는 못 간다’며 거부한 자리가 센다이총영사였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였다. 많은 외교관이 안타까워했다. 그랬던 박 조정관이 지난해 귀국해서도 마땅한 보직을 받지 못하다 이번에 북미·북핵·유엔·중동 아프리카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다자외교조정관이 된 것이다. 같은 꼬리표를 달았던 2004년 당시 조현동 북미3과장은 돌고 돌아 올 5월 외교부 1차관이 됐다.
한 원로 외교관은 “더는 자주파, 동맹파 논란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둘로 쪼개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짜인 21세기 외교 현실에 맞지도 않을 뿐더러 단순하게 편을 갈라버리면 억울한 피해자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MZ세대 한 외교관에게도 물어보니 “외교 정책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있고, 상황에 따라 기존 입장이 조정될 수도 있는데, 너는 무슨 파라고 낙인찍으면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어려워져 조직이 활력을 잃고 병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외교관은 “아무리 공무원이라고 사석에서 한 말까지 문제 삼고 응징하는 것은 과한 것 같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워싱턴 외교가에서 “너무 성급해 미국과 엇박자가 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올인’하다시피 추진한 게 대북 정책이다. 이때 실무를 맡은 외교부 북핵 라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올 3월 대선 결과가 나왔을 때 이들 중 몇몇은 “이제 귀양살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신들이 대폭 물갈이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거의 대부분은 현재 용산 대통령실과 외교부 본부에서 여전히 북핵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업무의 연속성과 개인 능력을 평가해 낸 인사였다고 한다. 무슨 색깔이나 누구 사람 꼬리표를 붙이지 않은 것이다. 이제 우리 외교에서 자주파, 동맹파 같은 말은 사라졌으면 한다. 굳이 있다면 ‘국익파’ ‘상식파’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