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5월이 되었네/이러한 날에는 그녀도 얇은 비단옷을 입으리/그 틈을 타고 마음을 사로잡으리’라고 하이네가 노래했듯이,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봄은 어디까지나 5월이다.”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 에세이 ‘라일락꽃 필 무렵’에서 읽었습니다. 러시아어 동시통역사이기도 한 그의 책 ‘문화편력기’(마음산책)에 실린 글이죠. 요네하라는 “그 5월을 대표하는 꽃은 라일락”이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럽 사람들에게 하이쿠라는 시 형식이 있었다면, 라일락은 틀림없이 5월의 계절어가 되었을 것이다. 라일락은 그런 꽃이다. 약간의 시차는 있겠지만, 4월 말부터 6월 초에 걸쳐 유럽의 길가와 공원 대부분은 라일락꽃으로 뒤덮인다.” ‘계절어[季語]’란 하이쿠 등에서 계절감을 나타내기 위해 넣도록 정해진 말이라고 하네요.
요네하라는 이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 있는 식물원을 방문했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계절은 바야흐로 눈부신 신록의 5월. 이 식물원에는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100종 이상의 라일락 컬렉션이 있었고, 마침 ‘라일락꽃 필 무렵’에 방문한 우리 일행은, 드니프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자줏빛을 띤 라일락꽃의 다채로움과 강렬한 향기에 압도당했다. 꽃은 기슭에 자리 잡은 교회의 황금빛 지붕을 향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내일이면 5월, 라일락 향기 짙어오는 밤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하다 키이우의 5월을 생각해 봅니다. 전쟁의 포화가 잠식한 그 땅에 올해도 라일락이 피었겠지요. 수필가 피천득이 “잎사귀 모양이 심장”이라 노래한 그 꽃의 달콤한 향기가 혹여 참혹한 현실과 대비돼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심장을 멍들게 하진 않을까요? 라일락꽃 피는 5월엔 부디 전쟁이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