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남하한 북한 어민들을 강제 북송하는 과정이 상세히 담긴 공소장이 9일 공개됐다. 사진은 2019년 11월 7일 강제 북송되는 북한 어민의 모습. /통일부

2019년 11월 문재인 정부가 귀순한 북한 어민 2명을 강제 북송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가 담긴 공소장이 9일 공개됐다. A4 용지 52장 분량인 공소장에는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 국가기관이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을 강제 북송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법 행위를 저지른 과정이 자세하게 적시돼 있다. 당시 정부가 북한 어민에 관한 첩보를 처음 입수한 뒤 강제 북송을 실행하기까지 열흘간 벌인 일이 상세하게 드러난 것이다.

①어민 나포전 이미 북송 협의

법무·통일·외교부 의견 검토 전 결정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북한 어민을 나포하기 전에 이미 강제 북송을 하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어선이 김책항에서 북한 함선의 추격을 피해 도주 중이라는 첩보를 2019년 10월 29일 입수했다. 그때부터 군은 감시를 강화했고 10월 31일 북방한계선(NLL) 남방 16㎞ 지점에 있던 북한 어선을 퇴거시켰다. 당시 국가안보실 수칙에 따르면, 북한 인원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는 경우 퇴거 조치나 현장 송환을 원칙으로 해야 했다.

그런데 2019년 11월 1일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등은 매뉴얼과는 다르게 북 어선이 남하하면 나포해 어민들을 북한에 송환하는 방안을 협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고 법무부·통일부·외교부 등 관계 부처의 의견을 모아 검토하기 전인데도 두 사람이 어민들을 강제 북송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2019년 10월 3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상에 보낸 조의문이 북송 결정의 배경이었다고 밝혔다. 당시 청와대는 11월 4일을 전후해 감사의 뜻을 담은 친서를 발송하면서 같은 달 25일 부산에서 열릴 한·아세안 정상 회의에 김정은을 초청하겠다는 내용도 담을 예정이었다. 이 친서를 북한에 보내면서 귀순 어민까지 북송해 ‘북한과 화해 협력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북한을 존중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상황은 이들이 논의한 대로 흘러갔다. 군은 2019년 11월 2일 북한 어민 2명을 나포했다. 정부는 중앙 합동 정보 조사를 시작했지만 청와대 지시에 따라 조기 종결했다. 11월 5일 정부는 어민 2명을 돌려보내겠다는 전통문에 이어 ‘김정은 초청’ 친서도 북에 보냈다. 11월 7일 정부는 북송을 원하지 않는 북한 어민 2명의 눈을 가려 군사분계선으로 끌고 갔고 거세게 저항하는 어민들을 북한군에 넘겼다.

②국정원 보고서 삭제·왜곡

‘귀순’ 용어 빼고… “북송 의견 보고서 만들라”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의 공소장에는 서훈 전 국정원장이 ‘북송 방침’에 맞춰 국정원 보고서 등을 수정·삭제하라고 강압적으로 지시한 정황도 자세히 담겼다.

공소장에 따르면, 서 전 원장은 2019년 11월 3일 대공수사국장이 ‘북 선원 중대 범죄 자백’ 보고서를 보고하자 “흉악범인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는 ‘북 어민 2명은 생활고로 남하했다며 귀순 요청’ ‘동료 선원 16명 살해 실토, 검찰·경찰에서 수사 진행하도록 조치함이 좋겠음’ 등 북송에 배치되는 취지였다. 서 전 원장은 11월 4일에는 국정원 3차장에게 “16명이나 죽인 애들이 귀순하고 싶어서 온 거겠냐, 귀순의 진정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라며 “우리는 북송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넣어 가지고 보고서를 만들어줘”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국정원 3차장이 “대공수사국에 설득이 가능하겠습니까? 두 번이나 실무 부서에서 반대한 것을”이라고 하자, 서 전 원장이 “그냥 해. 우리는 그냥 그 의견을 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후 국정원 3차장이 대공수사국장에게 서 전 원장의 지시를 전하며 ‘합동정보조사 상황’ 보고서를 수정·삭제하라고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위장 귀순·대공 혐의 여부를 추가 조사 중에 있으며 진술 검증, 거짓말 탐지기 검사 등을 통해 진술 신빙성을 확인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삭제되고, ‘진정한 귀순으로 보기 어렵고 희대의 살인범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없으니 북송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부분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서 전 원장에게 보고됐던 ‘북 선원 중대 범죄 자백’ 보고서도 삭제·수정됐다. 국정원 3차장이 대공수사국장이 가져온 보고서에 X 표시를 하면서 “송환을 전제로 하는 보고서인데 이걸 넣을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북 어민 자백의 진실 규명을 위해 혈흔 감정, 압수 수색 필요’ 등이 빠지면서 강제 북송 취지 결정에 맞게 다시 작성됐다는 것이다. 11월 5일에는 대공수사국장이 “합동정보조사 보고서에서 ‘귀순’ 용어를 빼라”고 지시하면서, ‘귀순’ 표현은 ‘월선’ ‘나포’로 바뀌었다.

③靑·국정원 실무진 반대 묵살

靑법무비서관 “北어민 송환 법적 근거없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2019년 11월 당시 문재인 정부의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도 등장한다.

공소장에 따르면,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강제 북송 방침이 확정된 11월 4일 청와대 회의를 주재했다. 청와대 회의에서 판사 출신 법무비서관이 ‘북한 어민을 송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강제 북송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노 전 실장은 ‘헌법 3조(영토 조항)와 4조(통일 조항)에 따라 남북한 간의 특수 관계를 감안할 때 북송이 가능하다’며 강제 북송을 결정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 전 실장은 이어 법무비서관에게 북송을 정당화할 수 있는 법리를 추가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은 청와대의 강제 북송 방침을 전달받은 뒤 “탈북 어민들을 돌려보내는 것이 타당하다는 청와대 회의 결과에 동의한다”고 회신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김 전 장관은 통일부 인도협력국장 등에게 강제 북송에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는 또 통일부 이산가족과에 ‘이번 사례는 다수 살해 등 귀순 의사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측면 감안’ ‘명백한 중대 형사 범죄자에 대한 예외적 추방(송환) 조치가 바람직’ 등 내용의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은 북한 어민들에 대한 조사가 끝나기도 전인 11월 3일 “안보실 차원에서 북송 방안을 검토해 보내달라”고 안보실 1차장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법무비서관실은 ‘북한 어민들을 난민으로 추방할 수 없고 북한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어 이를 근거로 송환할 수도 없다’는 취지로 반대했고, 국가위기관리센터도 ‘근거 없이 송환하면 논란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모두 묵살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