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시대 선포식'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14일 전국에 기회발전특구, 교육자유특구, 도심융합특구, 문화특구 등 4대 특구를 지정해 육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 육성 비전과 전략을 발표했다. 세제 혜택과 탈(脫)규제, 재정 지원을 통해 지역 소멸을 막고 균형 발전과 분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시대위는 이날 부산 국제금융센터에서 지방시대 선포식을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지방시대 비전과 전략·정책을 발표했다.

지방시대위는 내년부터 ‘기회발전특구’를 지정해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 특구로 옮기는 기업에는 양도세, 취득세, 법인세, 재산세 등 7가지 세금에 대해 파격적인 감면 혜택을 줄 예정이다. 기업이나 공장 이전에 따라 발생한 토지 양도 차익에 매기는 양도세, 공장 부지의 취득세, 개발부담금은 내지 않아도 되고 재산세와 법인세는 5년간 100% 면제하기로 했다. 또한 이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회발전특구 펀드’를 조성하고 이 펀드의 투자자들에게는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지방시대위는 또 부산과 대구, 대전, 울산, 광주 등 5대 광역시의 역세권을 개발해 ‘도심융합특구’를 조성할 계획이다. 첨단·벤처기업과 상업·문화·주거 시설이 집약된 ‘판교 테크노밸리’ 같은 미니 신도시를 지방 대도시에 만들기 위해 건축 규제 완화 등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교육자유특구’도 지정해 지방정부와 시·도 교육청, 대학, 기업이 머리를 맞대 맞춤형 교육을 추진할 수 있게 하고, 올 12월 7개 권역을 나눠 ‘문화특구’ 13곳을 지정, 3년 동안 최대 200억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2030년까지 1000개 이상 디지털 기업을 모은 디지털 혁신지구 5곳을 지방에 조성하고, 농어촌 생활인구 유입을 위해 농어촌 체험주택 도입도 추진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포식에서 “모든 권한을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말로만 지방을 외치던 지난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며 “지역에 변변한 쇼핑몰 하나 짓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정치적 상황을 더 이상 국민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윤석열 정부의 지방 발전 전략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기고, 지방정부 스스로가 혁신 계획을 짜면 중앙정부가 과감하게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14일 발표한 기회발전특구, 교육자유특구, 도심융합특구, 문화특구 등 4대 특구도 모두 이런 기조에 따라 조성될 예정이다.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은 “그동안 수많은 특구가 있고 수많은 지원이 있었지만 지방 발전은 늘 제자리걸음이었다”며 “4대 특구에는 지방이 요구하는 혜택을 한꺼번에 줘서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회발전특구와 도심융합특구에서 곧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길 기대한다고 한다. 기회발전특구 지정은 수도권 기업의 지방 이전이 목표다. 지방 기업이나 개인사업자는 물론 근로자 등에 7가지 파격적인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수도권 기업이 본사나 공장을 팔고 지방의 기회발전특구로 이전할 경우, 수도권 공장 매각에 따른 부동산 수익을 얻게 된다. 정부는 이에 대한 양도세는 물리지 않기로 했다. 기회발전특구 내 공장 부지를 살 때 내야 하는 취득세도 마찬가지다. 1년에 두 번 내는 재산세도 5년간 100%, 이후 5년간은 50% 깎아주기로 했다.

회사를 자녀에게 승계할 때 상속세 공제 대상도 현행 매출 5000억원 미만 기업에서 1조5000억원 미만 기업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수도권의 중견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전략이다. 지방시대위 관계자는 “개발부담금까지 포함해 수도권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세금 부담을 덜어준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악수하는 尹대통령 -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의 ‘지방 시대 선포식’에서 홍준표 대구시장과 악수하고 있다. 홍 시장 오른쪽으로 강기정 광주시장, 이장우 대전시장. /연합뉴스

이전 기업들에 대한 금융과 재정 지원도 이뤄진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도입한 ‘기회특구 펀드’와 비슷한 기회발전특구펀드를 조성해 이전 기업들을 지원한다. 트럼프 정부는 낙후한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기회특구’를 지정하고 펀드를 만들어 기업들을 살렸다. 투자자들에게는 이자소득과 배당소득에 대한 세제 혜택을 줘 투자를 유도하기로 했다. 수도권의 한 대기업 관계자는 “본사를 옮길 정도는 아니지만 신규 투자나 지역 거점 공장을 지을 때는 충분히 메리트가 있어 보인다”면서 “최근 새 공장 부지가 필요한 반도체나 배터리 등의 공장이 이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근로자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파격적이다. 지방시대위는 기회발전특구 내 분양하는 민영주택 물량의 10%를 ‘특공(특별공급)’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서울의 집을 팔고 특구 내 아파트를 사면, 전원주택 등 농어촌주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도세도 면제해준다. 지방시대위 관계자는 “기존에는 특구나 산업단지를 먼저 지정해놓고 기업을 유치하다 보니 산업단지 자체가 슬럼화되는 등 문제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기업이 원하는 곳에 특구를 지정하고 혜택을 줄 것”이라며 “이미 경북과 충북, 강원 등이 특구 지정을 희망하며 기업 유치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도심융합특구는 지방 대도시를 경쟁력 있게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혁신도시 등 기존 특구는 대부분 도시 외곽에 조성해 기업과 인재를 유치하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그러나 도심융합특구는 KTX 역세권 등 5대 광역시의 도심을 ‘입지규제 최소구역’으로 지정해 일종의 ‘규제 프리존’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특구 안에서는 높이와 용도 등 각종 건축 규제를 풀어 고층 복합 건물도 올릴 수 있게 한다. 벤처기업과 상업·문화 시설, 아파트 등이 있는 대도시 내 미니 신도시 형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지방시대위는 대구의 경북대 일대, 광주광역시 상무지구, 대전 KTX 대전역, 부산 센텀2지구, 울산 KTX 울산역 등 5곳을 선도 지역으로 정했다. 이 5곳은 내년부터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지방시대위 관계자는 “젊은 인재와 기업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교육자유특구는 보육에서부터 교육, 입시, 취업, 정주(定住)까지 지역 인재가 떠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올해부터 지방의 의대·약대·치대·한의대는 신입생의 40%를 지역 인재로 뽑아야 하는데 최대 80%까지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방시대위 관계자는 “당초 지방의 의료인력 부족 때문에 시행된 제도인데, 인재 유출을 막는 상징적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올 연말까지 ‘대한민국 문화도시’라는 이름으로 전국 13곳에 문화특구를 지정해 3년간 최대 200억원씩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