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당시 사회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 나고 ‘과연 이 사건을 유족이나 지인처럼 그 마음으로 누가 조사할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억울한 사연을 하나하나 들어주시고 공감하시는 진심의 눈빛을 볼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작년에 이 사건을 수사해‘계획 범죄’라는 걸 밝혀낸 한대웅 검사에게 최근 보낸 감사편지. /유족 제공

지난 15일 서울북부지검에 A4 용지 2장에 손으로 빼곡히 써내려간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수취인은 한대웅 검사(현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였다. 한 검사는 작년 4월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에 근무할 때 이른바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을 수사해 범인 김태현(26)씨를 살인·절도 등 5개 혐의로 기소했다.

김씨는 2020년 11월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20대 여성 A씨가 자신의 연락을 피하자, 작년 3월 23일 A씨 집에 침입해 A씨와 그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세 명을 연달아 살해한 혐의 등이 인정돼 지난 14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편지는 판결이 확정된 바로 다음날 한 검사에게 도착했다고 한다.

편지를 쓴 사람은 숨진 자매의 사촌 언니였다. 그는 “열심히 살아온 외숙모와 어린 동생들이 김태현에 의해 너무나 잔인하고 고통스럽고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다”면서 “일가족 생존자도 없는 이 사건은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한대웅 검사님은 달라도 너무 다르신 분이었다. 유족과 지인의 마음으로 조언하시고 사건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하게 해 주셨다”고 했다.

사건 초기 김씨는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검사는 피해자 중 한 명의 휴대전화를 분석해, 김씨가 피해자 세 모녀 중 작은딸을 살해한 뒤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어머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확인해 ‘계획 범죄’라는 점을 입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편지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