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질문
이정동 지음|민음사|264쪽|1만7000원
지난 25일 테슬라와 스페이스X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는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암호 화폐 도지 코인 매입 등 기행(奇行)으로 익숙하지만, 머스크는 ‘최초의 질문’을 던져 성공한 대표 사례다. 그는 2002년 위성을 발사할 때 매번 폐기해온 1단 로켓을 ‘재활용하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성공하면 위성 발사 비용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오늘날 스페이스X는 상업용 로켓 위탁 발사 시장 점유율 60%의 강자가 됐다.
‘축적의 시간’과 ‘축적의 길’을 펴내며 시행착오 경험을 축적해 기술 발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정동 서울대 교수(기술경영경제정책 전공)가 신간 ‘최초의 질문’으로 한국에 다시 화두를 던졌다. 더 이상 따라 할 선진국이 없어진 한국은 질문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눈떠보니 선진국’이라며 만족해서는 곤란하다”며 “고유한 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은 지정학적 게임 판에서 ‘누구의 편이냐’를 두고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고유한 기술이 왜 중요한가.
“한국은 고유한 기술이 없다면 국제사회에서 전략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 미·중 갈등을 비롯해 국제적으로 정치·경제적 새판 짜기가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배터리 산업 빼놓으면 한국은 ‘남만큼 하는 정도’다. 지정학적 격동과 기술 변동이라는 이중 파고를 넘으려면 결국 남들이 못하는 걸 산업 각 부분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자립하려면 고유 핵심전략기술이 필요하다. 이번 기차 달려갈 때 못 타면 끝난다.”
-얼마나 시급한가.
“그 떵떵거리던 일본 D램이 지금 어디 있나. 삼성도 안심 못 한다. 노키아 망한 걸 기억해야 한다. 국민소득 3만불은 신기루에 가깝다. 2만불 되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생각하고 긴장해야 한다. 상당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옥스퍼드대 학술지 ‘과학과 공공 정책’ 편집장으로 있는데, 중국 논문이 100개 들어올 때 한국은 3개 수준이다. 남들 하는 것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만족할 때가 아니다.”
-’축적’에 이어 ‘질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축적’ 개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축적과 퇴적을 구별 못하는 사람·조직이다. 단순한 시행착오의 반복은 퇴적이다. 그런데 축적이라 참칭하고 자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존 로드맵에서 벗어난 담대하고 무모한 질문에서 축적을 위한 시행착오가 이뤄진다는 얘길 하고 싶었다. ‘최초의 질문’은 축적의 프리퀄(전편) 개념이다.”
-로드맵에서 벗어난 질문이 뭔가.
“스페이스X가 대표적이다. 1단 로켓 재활용이라는 기존 상식 밖의 질문을 던졌다. 한국 대기업은 될 것 같은 사업을 시도하면서 뻔한 질문을 던지고 뻔한 결론을 얻는다. 그건 의미 있는 질문이라 할 수 없다.”
-한국이 노벨상 못 받는 이유는 질문이 없어서라고 했다.
“노벨상은 ‘카테고리 크리에이터’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mRNA 연구 모두 없던 학문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분야를 열 질문을 던지지 못하면, 노벨상도 없다. 세계 수준보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수준의 연구로는 한계가 있다. 해봐야 교과서에 실릴 내용도 아니고, 새로운 학문 분야를 만들어낼 것도 아니다.”
-제대로 질문 못 하는 것은 교육 탓도 있지 않나.
“정시 선발과 학생부 종합 전형 선발 인원 비율 따지는 교육 개혁 논의는 대표적인 ‘퇴적’ 사례다. 유치원에서 대학으로 이어지는 제도권 교육은 수명을 다했다. 이코노미스트도 지적했다. 개도국·선진국 막론하고 대학에 투자 늘리는데, 그거 전혀 효과 없는 돈 낭비라고. 제도권 교육이 아무리 뛰어난들 기술 발달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대기업 임원 하던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빅데이터와 AI를 공부하려 했더니 제도권에서는 배울 곳이 없다더라. 이런 수요를 감당할 평생학습 체계를 갖춰야 한다. 새 정부에 당부하고 싶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분야 산업을 찾아 민간과 협력해야 한다. 미국은 코로나 백신 개발과 스페이스X에 직간접적 지원을 했다. 기업이 기술 개발할 시간을 벌어줄 인내 자금을 세금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세 먼지, 인수 공통 전염병, 구제역 등의 분야가 후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었나.
“공공부문이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는 역량은 극히 취약하다. 시리(Siri) 같은 인공지능비서, 자율주행기술 등은 사실 미국 공공부문이 문제를 민간에 출제했던 것들이다. 그 결과 관련 핵심기술이 만들어졌다. 한국 공공부문은 그런 ‘문제 출제력’이 부족하다. 기업이 원하는 연구과제에 비용을 대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필요한 연구과제를 민간이 국가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형태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돈(세금) 낸 사람이 국민이니까.”
-기업에 돈을 준다는 방식은 논란을 부를 수 있다.
“서울대 본부가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자 강의를 줌(Zoom)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그거 다 유료다. 우리 세금 들여서 외국 업체가 기술을 더 쌓도록 도와준 꼴이다. 국내에 비대면 서비스 개발하는 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어차피 쓸 돈이면, 그 돈으로 국내 기업을 육성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질문은 누가 던져야 하나.
“결국 질문은 리더가 던져야 한다. 비즈니스 리더가 각성해야 한다.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