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과거 연인 관계였던 B씨를 스토킹한 혐의로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고 2023년 3월 출소했다. A씨는 3개월 후 B씨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 소송을 냈다. A씨가 B씨 주소를 알아내려고 B씨 계좌로 일방적으로 입금했던 ‘소액’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낸 것이다. A씨는 그해 9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다시 기소됐고, 서울고법은 작년 6월 “B씨에게 연락을 시도할 목적으로 법원의 주소 보정 명령을 악용해 주소지를 알아내 죄질이 좋지 않다”며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C씨도 만남을 거부하는 전 연인에게 1년에 걸쳐 계속 연락을 시도해 협박 등 혐의로 기소된 이후에도 손해배상 소송을 내 피해자의 집 주소를 파악했다. 춘천지법은 2021년 “스토킹 범죄에 해당한다”며 C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두 판결 모두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처럼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 주소를 확인하려고 민사소송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통상 민사소송을 내는 사람은 상대방(피고) 주소를 기재해야 한다. 법원은 이 주소로 소장 등을 피고에게 보내는데, 만약 주소가 틀리면 이를 보완하라는 ‘주소 보정 명령’을 내린다. 이에 따라 행정기관은 피고 주소지가 적힌 주민등록초본을 발급한다. 이 과정에서 소송을 낸 스토킹 가해자도 피해자 정보를 알 수 있게 된다.

현재로선 이를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특히 소액의 대여금 반환 청구 소송의 경우, 여러 사건을 한꺼번에 묶어 주소 보정 명령을 내린다. 소송 낸 사람에게 다른 의도가 있더라도 이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민사소송에서 소송 가액이 3000만원 이하일 경우 소액 사건으로 분류한다.

오는 7월 12일 시행되는 개정 민사소송법에는 개선된 내용이 담겼다. 소송 관계인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을 경우, 법원이 소송 기록의 열람·복사·송달에 앞서 소송 관계인이 지정하는 정보를 보호하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민사소송 악용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개정법은 ‘당사자의 신청’을 전제로 법원이 보호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스토킹 피해자가 자신을 상대로 한 소장이 접수됐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경우엔 보호 조치가 어렵다”고 했다. 한 변호사는 “법원이 행정기관과 협의해 개인 정보 파악을 위한 소송 악용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