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5곡)은 흔히 ‘첼로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로 불린다. 그만큼 연주자에게 절대적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첼리스트 양성원(55) 연세대 교수는 바흐와 베토벤의 ‘성서’를 모두 녹음한 대표적 중견 연주자. 그는 23일 서울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자신의 음악 인생을 ‘장편소설’에 비유했다. “음반 한 장을 녹음할 때마다 장편소설의 한 챕터를 끝내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15장의 음반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그가 ‘첼로의 장편소설’ 16장을 탈고했다. 최근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 음반(데카)을 발표한 것. 지난 2007년 베토벤 첼로 소나타 첫 전곡 음반(EMI)에 이어서 벌써 두 번째 녹음이다.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도 이미 두 차례 음반으로 펴냈다. ‘첼로의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를 모두 두 차례씩 답파한 셈이다. 그는 끊임없이 고전을 녹음하고 연주하는 이유에 대해 “유행을 타는 곡은 쉽게 사라지지만 명곡은 전쟁과 혁명, 사회 변화 속에서도 수백년씩 감동을 선사하고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15년의 시간이 빚어낸 변화에 대한 질문에 그는 첼로의 네 현(絃)을 가리켰다. 2007년 첫 베토벤 녹음 당시에는 모두 현대식 금속 현으로 연주했다면, 이번에는 저음 두 줄에는 양 창자를 꼬아서 만든 거트(gut) 현을 사용했다. 바로크나 베토벤 당대까지도 사용했던 거트 현은 음량(音量)이 작고 잦은 조율이 필요하지만, 부드럽고 풍부한 음색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양 교수는 “모든 기악 연주자의 이상(理想)은 악기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며 특히 첼로는 ‘인간의 목소리’에 비유된다”며 “풍부하고 깊은 첼로의 저음을 통해서 섬세한 목소리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녹음 과정에서도 그는 베토벤의 자필 악보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서 여러 판본으로 녹음하는 학구적 면모를 보였다.
지금까지는 독주와 협연, 피아노 트리오 ‘오원’의 실내악 활동에 매진했지만 최근 독일 코블렌츠의 낡은 폐공장을 활용한 무대에서 열린 음악회를 통해 지휘자로도 변신했다. 이 연주회를 앞두고 그는 지휘 교습도 직접 받았다. 양 교수는 “연주할 때는 혹시라도 실수하면 며칠씩 잠이 안 오지만, 지휘는 아마추어이다 보니 만족감이 크고 은근히 중독성도 있다”며 웃었다.
이번 음반 발표를 계기로 부산(9월 23일)·통영(25일)·대전(27일)·서울(29일)·여수(10월 1일) 등 5개 도시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도 갖는다. 혹시 세 번째 베토벤 녹음도 가능할까. 그는 “이번 음반도 최후의 버전이 아니며 그 뒤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부지런한 사람이 일하는 비결을 엿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