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휘발유 가격이 한 해 사이 무려 60% 뛴 2021년 11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리나 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 정유 회사들이 불법행위를 하는지 조사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미 FTC는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처럼 독과점과 불공정을 조사하는 정부 기관이다. 독과점이 가격 상승의 원흉으로 지목된 것이다. 미국 정유 시장은 양대 기업인 엑손모빌과 셰브론이 각각 20%, 10%쯤 차지하고 나머지는 중소 업체 수십 곳이 나눠 가지는 구조다.

작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유소 휘발유 값이 1갤런(3.78L)당 최저 6.69달러로 표시돼 있다. /EPA 연합뉴스

독과점 기업이 있으면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경제학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대표적인 게 관리가격 가설과 시장 지배력 가설 등이다.

관리가격 가설은 1972년 가디너 민스 하버드대 교수가 제기한 것이다. 많은 기업이 경쟁하는 시장에서는 수요가 늘어나고 줄어드는 데 따라 가격이 즉시 반응하지만 독과점 시장의 ‘관리가격’은 즉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요가 늘어날 땐 쉽게 오르지만, 수요가 줄어들 땐 한동안 그대로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시장 지배력 가설은 20세기 초 경제학계에서 독점 이론이 나올 때부터 거론되던 것이다. 가격 결정력이 높은 독과점 기업은 이윤을 얻기 위해 경쟁 시장보다 가격을 빠르게 올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또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는 원자재 가격이 떨어질 때 기업들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바로 판매 가격을 낮추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독과점 기업은 이익을 챙기면 되지 굳이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독과점이 인플레이션을 부른다고 설명한다.

국내에서 판매 가격이 내리지 않는 품목을 보면 독과점인 경우가 많다. 통신 시장은 통신 3사(SKT·KT·LG유플러스)의 점유율이 약 83%에 이른다. 중소 사업자들이 진출할 수 있는 알뜰폰 시장이 있지만, 3사 독과점 체제를 바꾸진 못하고 있다. 자동차는 국내에서 판매하는 신차 10대 중 8대가 현대차·기아 차량이다. 지난 1분기(1~3월) 국산 5사와 수입 차를 합친 전체 내수 판매에서 현대차·기아의 점유율은 78%로 지난해(74%)보다 오히려 독점력이 커졌다. 국내 노트북 시장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점유율이 73.8%(지난 1분기 기준)다. 지난 4월 기준 국내 항공 여객 시장에서도 대한항공 계열과 아시아나 계열, 제주항공 등 3사의 점유율은 70.5%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