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화랑

고목에서 꽃이 피는 것을 회춘이라 한다.

손바닥 크기만 한 오래된 나무 쟁반에 ‘꽃의 화가’ 김종학(86)은 20년 전, 봄의 정취를 그려넣었다. 갠 하늘, 분분한 꽃 주변에 나비가 난다. 그림이 오목한 쟁반 안쪽에 들어앉아 화사한 오후의 물웅덩이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인사동에서 알아주는 목기(木器) 수집가였던 화가는 곧잘 떡판이나 접시 위에 그림을 그려넣곤 했다.

그러면 마른 나무는 알아서 다시 살아났다. 흑빛의 19세기 장(欌)도 창고에서 혼자 오랜 동절기를 지나왔다. 거기에 역시 100년 가까이 묵은 베갯모 50여 개를 채워넣었다. 김종학 화가가 사랑했고 화풍에도 영향을 받은 민예품이다. 형형색색의 자수 ‘福’과 매화, 장미, 나팔꽃이 나무에 주렁주렁 달렸다. 긴 시간 잊고 있던 체온과 맞닿은 것처럼.

옛 목가구와 그림이 어우러진 전시 ‘예술이 생활과 만났을 때’가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30일까지 열린다. 강화반닫이부터 목등잔, 지승바구니, 약장 등 조선 후기 규방공예가 김종학·박수근이 남긴 작은 그림과 한 쌍의 풍경이 된다. 작품을 모으고 배치까지 도맡은 박명자 회장은 “아기자기한 우리 민예품과 사랑방 가구의 고고한 아름다움에서 위안받고자 꾸몄다”고 말했다. 근처 꽃시장에서 직접 골라 토기에 소담히 꽂아놓은 꽃꽂이도 전시장에 봄빛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