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유심 교체’ 북새통 - 3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SK텔레콤 로밍센터에 출국을 앞두고 유심을 교체하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긴 줄이 생겼다. SK텔레콤은 이번 해킹 사고 때 소극적으로 대처하면서 결과적으로 고객 불편을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9일까지 일주일 동안 SK텔레콤에서 KT나 LG유플러스로 통신사를 바꾼 사람만 9만명에 육박한다. /고운호 기자

SK텔레콤의 해킹 사고가 지난달 22일 처음 알려진 뒤 일주일간 SK텔레콤을 떠나 KT나 LG유플러스로 통신사를 바꾼 번호 이동 이용자가 9만명에 육박한다. 다른 통신사에서 SK텔레콤으로 유입된 이용자를 감안하더라도 이 기간 순감 규모만 6만명이 넘었다. 지난 3월 SKT의 순감 규모(1600여 명)와 비교하면 일주일 만에 37배 이상이 떠난 셈이다. 30일 국회 과방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SK텔레콤의 대응을 일제히 비판해 이 사안이 정치권까지 번졌고, 일부에선 피해 집단소송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이번 사태는 SK텔레콤이 통신 업계 1위 사업자(점유율 40.5%)에 걸맞은 위상을 보이지 못하고 발생 초기부터 안일하고 미숙한 대응을 했다는 문제점이 먼저 지적된다. 또 진정성이 결여된 전체 가입자 2300만명 유심 무료 교체 발표, 여기에 서비스 업체로서 고객에게 정서적으로 다가가기보다 기술적 측면에 과도하게 집중했다는 점 등이 어우러져 사태를 확대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패학의 교과서’로 번져 버린 SKT의 유심(USIM) 해킹 사건이 발생한 이후 ‘13일’간의 상황을 분석해 봤다.

◇초반엔 문자 안내도 안 보내… ‘T월드’만 공지

SK텔레콤은 지난 18일 유심 정보를 보관한 서버 등이 해킹당한 사실을 처음 파악했지만, 나흘이 지난 22일에야 언론에 보도 참고 자료를 배포해 알렸다. 복제폰에 악용될 위험이 있는 유심 정보가 해킹됐음에도 심각성 대신 “주민등록번호, 결제 계좌번호 등 민감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에 주안점을 둔 1차 발표였다.

더욱이 공지하는 방식 역시 고객에게 문자 공지 대신 자사 ‘T월드’ 인터넷 홈페이지와 앱에 사과문을 올리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 때문에 “중요한 안내를 홈페이지나 앱에만 한 이유가 뭐냐” “뉴스에서 내 정보가 해킹됐다는 걸 알게 됐다”는 등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결국 사과문과 유심 보호 서비스 안내를 담은 문자 전송은 다음 날인 23일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2300만명 전원에게 일시에 보낸 게 아니라 ’서버 과부하’를 이유로 쪼개서 보내다 일주일 만에 전송을 마쳤다. 그 사이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첨단 기업들과 방산 기업, 그리고 정부 주요 부처들은 임원진과 간부에게 유심 교체를 지시하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업계에선 “신속한 통보를 못 해 일반 국민의 불안감이 확대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한다.

◇SKT 대표, 사흘 만에 직접 사과 발표

유영상 대표는 해킹 사건이 알려진 뒤 사흘 만인 지난 25일에야 직접 언론 설명회를 열고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그는 “오는 28일부터 SK텔레콤 모든 고객을 대상으로 원하는 경우 유심을 무료로 교체하는 추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확보된 유심은 약 100만개로, 전체 가입자(2300만명)의 약 4%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유심 무상 교체 첫날인 28일부터 유심 대란이 벌어졌고, 전국 주요 매장 앞에선 개점 2~3시간 전부터 가입자들이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고객 불편에 대한 해결책은 소홀

SK텔레콤이 유심 보호 서비스 안내 등 기술적 측면에 얽매여 고객 불편을 해소하는 데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유심 칩을 교체한 고객들이 겪은 혼란이다. 유심 칩 교체에 성공한 일부 고객에게서도 “교통 카드 잔액이 0원이 됐다” “연락처가 모두 사라졌다”는 등 불만이 제기됐다. 이런 현상은 유심 칩을 교체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유심 보호 서비스에 등록하면 복제폰 피해에서 안전하다”고 수차례 알렸지만 유심 교체 시 주의 사항 안내는 소홀해 고객들은 언론 보도 등으로 관련 정보를 얻어야 했다.

한편 경찰은 이번 해킹 사건에 관한 본격 수사에 들어갔다. 서울경찰청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에서 정식 수사로 전환했다고 30일 밝혔다. 관련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고 국내외 공조 체계를 가동해 해킹 경위와 배후를 조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