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지는 거였구나/한세상 뜨겁게 불태우다/금빛으로 저무는 거였구나.”
경기 화성에 사는 이생문(74)씨는 제2회 ‘짧은 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시 제목은 ‘저녁 노을’이다. 이씨는 “매일 저녁 일몰을 보며 저렇게 뜨겁게 살았던 적 있었나 자문하며 쓴 시”라며 “가족을 위해 치열하게 살긴 했어도 나를 위해 뜨겁게 살았던 적은 없던 삶을 스스로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는 6·25 전쟁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조선소에서 일하다 개인 사업을 차렸지만 1997년 IMF로 사업이 망했다. 막노동을 하며 1남 2녀를 키워냈다. 이씨는 “고단한 삶을 채워준 건 시를 읽고 쓰는 일이었다”며 “나이를 더 먹어 펜을 손에 쥘 힘이 없는 날이 오더라도 마음으로 죽을 때까지 시를 쓸 것”이라고 했다.
한국시인협회·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주최하고 본지가 후원한 ‘짧은 시 공모전’엔 65세부터 100세까지 폭넓은 나이대 어르신이 응모했다. 총 8500편이 제출돼 12명이 당선됐다. 심사위원들은 “시간이 주는 경험이라는 보고(寶庫)를 통해 우리 시단의 귀중한 문화적 자산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문학세계사는 응모작 중 77편을 엮어 ‘꽃은 오래 머물지 않아서 아름답다’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했다.
최우수상 수상작은 제주 서귀포에 사는 김명자(85)씨의 ‘찔레꽃 어머니’다. “오월이면/하얗게 핀 찔레꽃/어머니가 거기 서 있는 것 같다/엄마 하고 불러보지만/대답 대신 하얗게 웃는다/언제나 머리에 쓰던 하얀 수건/엄마는 왜 맨날 수건을 쓰고 있었을까/묻고 싶었지만/찔레꽃 향기만 쏟아진다.” 김씨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며 쓴 시다.
김씨는 “봄에 하얗게 핀 찔레꽃만 보면 항상 머리에 하얀 수건을 쓰고 다니던 어머니가 생각났다”며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어 함부로 다가기 어려운 찔레꽃처럼, 사는 게 바빠 마냥 다정하지만은 않았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부터 한 달에 두 번 성당에서 하는 시 창작 교실에 나가 시를 배운다고 한다. 김씨는 “시를 쓰면 손 운동도 되고 머리 회전도 잘되는 것 같다”며 “상을 받고 손자들이 ‘할머니 시인 됐다’며 달려와 안기는데 정말 시인이 된 것 같아 기뻤다”고 했다.
문학세계사 관계자는 “일상의 소중함이나 가족 관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 많았다”며 “노인 문학이 한국 문단의 새로운 기풍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