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요. 우리가 왜 이걸 하겠다고 했을까요?”
다음 달 2일 개막하는 서울시뮤지컬단 ‘맥베스’(연출 조윤지)의 박천휘(52) 작곡가와 김은성(46) 작가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세종문화회관의 연말 단골손님은 테마곡 ‘투모로우’로 유명한 가족 뮤지컬 ‘애니’. 하지만 올해는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 원작의 뮤지컬이 기다린다. 추앙받는 원작과 비교당할 게 뻔하니 어쩌면 ‘잘해야 본전’인 운명. 가장 각광받는 뮤지컬 창작자들이 왜 ‘무모한 도전’에 뛰어들었을까. 두 사람을 최근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정도가 성공했을 뿐, 그동안 셰익스피어 재창작이나 뮤지컬화는 금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박 작곡가는 “작가의 초고 안에 열쇠가 있었다. 읽으면서 ‘뮤지컬이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고 했다. “원고가 이미 음악적으로 잘 구조화돼 있었어요. 맥베스의 벼랑 끝 전투와 결정적 승리가 묘사되는 오프닝의 8분 분량 곡처럼, 읽자마자 바로 음악이 떠올라 써 내려간 곡도 많았고요.” 다양한 연극과 뮤지컬 음악을 만들어온 박천휘 작곡가는 최근 그가 작곡한 서울예술단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일본에 라이선스 수출돼 전 석 매진을 기록하며 또 한 번 역량을 인정받았다.
원고에 감춰 놓은 그 ‘열쇠’가 뭐였는지 묻자, 김 작가는 “작품을 제안받고 맥베스 영화들부터 찾아 봤는데 재미가 없더라. 위기였다”고 운을 뗐다. “왜 재미가 없을까 곰곰이 따져 보니 마녀의 유혹 같은 초자연적 힘에 휘둘리는 중세적 세계관이 인물의 생동감을 가리고 있었어요. 주술은 모두 걷어내고 제 힘으로 운명을 개척하는 현대적 인물로 만들자고 생각했죠.” 2016년 차범석 희곡상 수상자인 김은성 작가 역시 올해 초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연극 ‘빵야’(연출 김태형)가 열광적 상찬을 받았고 첫 창극 대본을 쓴 국립창극단 ‘베니스의 상인들’도 전 회차 전 석 매진을 기록했다.
잘나가는 두 사람이 재창조한 ‘맥베스’는 구국의 영웅이었으나 오히려 좌천되며 왕위에 대한 욕망을 불태운다. 야심을 향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돌진할 현실적 동인을 가진 인물이 된 것이다. 거기서부터 뮤지컬 음악에 담길 격앙된 정서적 굴곡이 흘러나왔다. 김 작가는 “운명이라는 장막을 걷어내자 야심가들의 정치적 암투가 빚어내는 핏빛 왕실 누아르로 변하더라”라고 했다.
영화 ‘조커’나 ‘배트맨’처럼 악당이 주인공이 되는 ‘반(反)영웅’의 이야기. 그리스 비극처럼 코러스를 도입해 몰입과 소격(거리두기)을 오가는 리듬을 만들어냈다. 박 작곡가는 “비극의 정조를 살리려 단조의 멜로디에 스타일을 입히는 것도, 정서적 진폭이 큰 인물들에게 몰입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다. 여지껏 심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던 작업”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셰익스피어의 원전을 건드리는 건 부담스러운 일. 하지만 김 작가는 “한 편으론 부담됐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전혀 부담이 안되더라”고 했다. “원작을 뛰어넘을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 안할 테니까요. 자연스럽게 겸손한 작업이 됐어요. 욕 먹을 게 당연하니까 더 마음 편히 김은성 버전의 맥베스로 다시 쓸 수 있었어요.” 사실상 첫 뮤지컬 작업이었던 것도 무모한 도전 의지를 키우는 데 한 몫 했다.
음악의 컨셉은 소용돌이치듯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죽음의 왈츠”. 박 작곡가는 “마지막 맥베스가 죽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관객은 드물 것”이라고 했다. 창작자가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자기 작품에 대해 이만큼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은 흔치 않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내달 30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