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에 있는 자동차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모션’에 다니는 이기성(33)씨는 올해 아빠가 될 계획이다. 원래 그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맞벌이 무자녀 가정)’이었다. 그런데 작년 여름 사내 직원들과 함께 여행한 뒤 출산을 결심하게 됐다. 아이 키우는 아빠들이 만든 모임 ‘모션히어로’ 회원들과 대부도로 떠난 1박 2일 가족 동반 여행이었다. 이씨는 아이가 없었지만 따라갔다. 이씨는 “처음엔 또래 직원과 친해질 생각으로 참가했는데, 동료 아이들과 이틀 동안 놀아주며 아이가 주는 행복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검은 옷을 즐겨 입는 이씨를 “까만 삼촌”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고 한다. 이씨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벌써 ‘아빠 모임’의 정식 회원이 돼 아이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씨는 “딩크족도 아이 낳게 하는 모임”이라 했다.
이씨가 다니는 ‘모션(Mocean)’은 직원 41명 중 34명이 남자인 ‘남초’ 기업이다. 아빠들 모임은 2022년 김진환(38)씨가 제안해 만들었다. 김씨는 여덟 살, 여섯 살 두 딸의 아빠다. 김씨는 “엄마들은 인터넷 맘 카페나 회사에서 동료랑 육아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데, 아빠들은 그런 대화를 할 일이 별로 없다”며 “아빠들끼리도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모임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회사 직원 휴게실에선 예비 아빠를 포함한 6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 주말에 어디 갈까’였다. 김씨가 놀이공원에서 아이와 함께 찍은 ‘기린 먹이 주기’ 체험 사진을 보여주자 질문이 쏟아졌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나” “체험비는 얼마냐” “위험하진 않으냐” 같은 것이다. 아빠들은 “나도 애들 데리고 가봐야겠다” “멀리서 동물을 보기만 하는 것보다 재밌겠다”고 했다.
세 딸(12·11·6세)을 키우는 최종영(44)씨는 딸 가진 사람만 알 수 있는 경험담도 들려줬다. 최씨는 “딸이 생리를 시작할 때 축하 파티를 열어주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준다더라”며 “생소했지만 얼마 전 큰딸이 초경을 해 케이크를 사줬다”고 말했다. 옆에서 열두 살 딸을 키우는 이종수(42)씨도 “알아둬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션’은 기업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직원들이 육아와 일을 병행하도록 돕는 여러 제도를 운영한다. 여성 직원은 출산휴가 3개월을 쓴 뒤 자동으로 육아휴직 3개월을 쓸 수 있다.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회사에 따로 말할 필요 없이 최소 3개월은 자동으로 쉴 수 있다는 뜻이다. 남성 직원도 법정 배우자 출산휴가 10일에 더해 10일간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오전 7시부터 10시 사이에 자유롭게 출근할 수 있는 ‘시차 출퇴근제’도 운영한다. 일곱 살, 여섯 살 아들을 키우는 진광일(39)씨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날은 오전 10시까지 출근하고, 아이가 병원에 가는 날은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한다”고 말했다. 매주 금요일은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이 많다. 가족이 아프거나 다쳐 돌봐야 할 때도 재택근무할 수 있다. 한 직원은 “출퇴근하느라 쓰는 시간을 아이와 보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가장 호평하는 제도는 ‘육아휴직 대체 보상’이다. 모션은 직원이 육아휴직을 떠나면 대체 인력을 적극 채용한다. 보통 소규모 기업에서는 동료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게 미안해서 육아휴직을 못 쓰는 경우가 많다. 모션은 대체 인력을 못 구했을 때 육아휴직자의 팀원들에게 업무를 나눠주고 급여를 추가 지급한 적도 있다. 2022년 9월부터 3개월간 육아휴직을 한 이우영(33)씨는 “복직 후 일을 대신해 줘 감사하다는 뜻에서 떡을 돌리는 회사도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회사 차원에서 이미 보상해 주니 내가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임신부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임신기 재택근무’ 제도도 있다. 최근 실제로 사용한 1호 직원이 나왔다. 현재 임신 8주 차인 전유진(30)씨는 6주 차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하루 1시간씩 운전해 출근했는데, 임신 후 차멀미도 심해지고 쉽게 피곤해졌다. 출근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도 있었다. 전씨는 “일하다 무슨 일이 생겨도 다니는 산부인과에 바로 갈 수 있어 안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