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6일 “조봉암도 사법 살인이 됐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사형 선고를 받은 일이 있다”며 “반드시 살아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날 “거대 기득권과 싸우고 있다” “살아남겠다”고 했다. 지난 1일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민주당은 사법부 압박 총력전에 나섰다. 이 후보는 이런 당 기조와는 거리를 두며 민생 정책과 현장 방문 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지층 결집이 최우선이라는 판단하에 전략을 바꿔 이 후보가 직접 사법부 공격에 ‘참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 후보는 이날 충북 증평군의 한 전통시장에서 “조봉암은 농지 개혁으로 대한민국의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었다. 그 훌륭한 정치인이 사법 살인됐다. 김대중은 왜 아무런 한 일도 없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받았느냐”며 “죽은 사람도 있고, 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이번에는 반드시 살아서, 반드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했다. 그는 충북 영동의 전통시장에선 “우리 역사에서 정치적 갈등이 특정 세력의 암살로 점철된 가장 대표적인 경우는 김구 선생 피살”이라고도 했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독립운동가 조봉암·김구 선생, 김대중 전 대통령 사례에 빗댄 것이다.
조봉암 선생은 1959년 진보당 사건으로 처형됐다가 생을 마감한 지 52년이 지난 2011년에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복권됐다. 김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로 1980년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1982년 형 집행정지를 받았고 이후 정치 활동을 재개해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 후보는 충북 옥천 시장을 찾아서는 “여기가 육영수 여사 고향이라며, (시해범인) 문세광에게 살해당하셨죠. 이유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정치적 이유로 돌아가신 것 맞는 것 같다”며 “대한민국 역시 정치적 이유로 죽고 죽이는 게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내란’이라는 취지로도 말했다. 그는 “지금 계속되고 있는 2차, 3차 내란 시도도 곧 국민의 위대한 손길에 의해 정확하게 진압될 것”이라고 했다. 당 선거대책위원회 총무본부장인 김윤덕 의원도 이날 앞서 선대위 회의에서 “내란 수괴 대통령의 파면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것이 2차 내란”이라며 “이제 조희대 대법원이 3차 내란을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 후보는 그동안 지역을 돌아다니는 ‘경청 투어’를 하면서 “당에서 국민 뜻에 맞게 처리할 것”이라며 민주당의 사법부 압박에 거리를 둬 왔다. 당과 달리 신중한 태도와 절제된 메시지로 민생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중도층과 지지층을 동시에 겨냥하겠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이날 이 후보가 직접 대법원 공격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당내에선 “더 이상 투트랙 전략으론 감당이 어렵다고 본 것”이란 말이 나왔다. 지금은 지지층의 위기의식을 고조시켜 결집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후보 측은 “최악의 경우 대법원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진짜로 대선 전에 선거법 유죄 판결을 내릴 수도 있지 않느냐”며 “비상사태로 임해야 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특히 기득권 불신을 강조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이번 대선이 국힘(국민의힘) 후보와 경쟁인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대한민국 거대 기득권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게 누구든, 국민과 함께 꼭 이기겠다”며 “결국, 국민이 한다”고 했다. 충북 보은 연설에선 서울대보다 지방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이 더 필요하다면서 “제가 이러다 보니 기득권자로부터 미움을 받는다”고 했다. 대법원과 국민의힘을 기득권으로 규정, 자신이 부당하게 기득권의 견제를 받고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 후보는 연설 도중 지난해 1월 당한 피습으로 목에 남은 상처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슬아슬하게 1㎜ 차이로 살았다”고 했다. 그는 “어떤 분이 ‘제발 죽지 마세요’ 하는데, 거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물리적으로 죽는 게 있고, 법률적으로도 죽이려면 죽일 수 있다”며 “살아난 게 신통하지 않으냐. 제가 반드시 살아나겠다”고 했다.
☞조봉암·김대중 재판
조봉암 사법 살인
죽산(竹山) 조봉암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 정부에서 농림부 장관,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그러나 이후 이승만에게 맞서 대선에 출마하고 진보당을 창당해 활동하던 중 1959년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사형 선고를 받고 처형됐다. 1990년대 들어 복권 움직임이 본격화됐고, 2011년 대법원은 재심에서 조봉암의 무죄를 선고했다.
김대중 사형 선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서울의 봄’ 국면에서 내란 음모 혐의로 체포됐다. 북한의 사주를 받아 학생과 노조를 선동해 내란을 일으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해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지만 국내외에서 계속된 구명 운동과 미국의 압박으로 집행은 되지 않았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