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와의 교우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아담 샬 신부는 천문학과 역법의 대가이기도 하다. 서양식 역법을 도입한 명의 ‘숭정역서’와 청의 ‘시헌력’ 모두 그의 작품이다. 외국인 최초로 흠천감정(천문 관측 기관의 최고 책임자)에 오르고 순치제의 총애를 받아 정1품의 영예를 얻은 그였지만, 말년은 순탄치 않았다. 반(反)서양 세력에게 모함당한 그는 고희가 넘은 고령에 수년간 옥고를 치르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배경에는 양광선(楊光先)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부득이(不得已)’라는 책을 엮어 서양 세력의 사악함과 신역법의 오류를 고발하는 한편, 대대적인 탄핵 상소 운동을 벌이면서 반서양 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자다. 순치제 사후 궁정 권력 암투와 맞물려 탄핵 광풍이 몰아치자 아담 샬을 비롯한 신역법 진영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양광선은 사실 엉터리 점성술사로, 무고와 탄핵 상소를 일삼는 잡배에 불과했다. 아담 샬을 실각시키고 흠천감정 자리를 꿰찬 그는 번번이 역 계산에 실패했고, 이번에는 자신이 오류를 지적당하는 처지가 된다. 이를 수상히 여긴 강희제의 명으로 1년에 걸쳐 천체를 실측한 결과 아담 샬의 신역법이 옳다는 것이 입증되자, 그는 무고죄로 사형을 언도받는다. 소위 ‘강희역옥(康熙曆獄)’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부득이’는 사사로운 이(利)를 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대부들이 상소문을 쓸 때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사(私)가 아니라 공(公)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정치판에서 ‘부득이 어법’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당사자의 변이야 무엇이건, 경험칙은 부득이를 내세우며 말을 바꾸는 사람일수록 사심을 의심해 볼만하다는 가르침을 준다. 누구의 말처럼 한 사람을 오랫동안 속이거나 많은 사람을 한때 속일 수는 있어도 모두를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사필귀정이란 그런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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