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8년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가 소쇄원 주인 양산보(梁山甫·1503∼1557)에게 보낸 한시 한 편이 전한다. ‘무신(1548)년 정월 보름날 소쇄원에 드리다(戊申上元奉寄瀟灑園)’라는 제목의 시인데 내용인즉 이러하다. “소쇄원에는 소쇄옹이 있어(瀟灑園中瀟灑翁)/ 한 해 농사를 동풍에 점쳐보네(一年春事占東風)/ 매화 소식은 언제나 변함이 없으나(梅花消息渾依舊)/ 묻노니 인심 또한 그대로인지(爲問人心同不同).” 하서 김인후는 퇴계 이황과 성균관에서 함께 공부한 후 문과에 급제해 홍문관 박사 겸 세자시강원 설서(說書)로 훗날 인종이 되는 세자를 가르쳤던 이다. 하지만 인종이 즉위 9개월 만에 사망하고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 장성으로 돌아가 성리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정진한 올곧은 인물이다. 훗날 정조 때에 이르러 문정공(文正公)이란 시호와 더불어 문묘에 배향된 18현 중 한 사람이 그이다. 대원군이 그의 고향 장성을 가리켜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 즉 학문으로는 장성만 한 곳이 없다고 말한 까닭도 그로부터 연유한다.

# 하서가 그의 사돈인 양산보에게 보낸 이 한시를 작금의 풍류로 변용시켜 읊어보자면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용산원에는 석열옹 있어/ 한 해 국정을 동풍에 점쳐보네/ 매화 소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으나/ 묻노니 민심 또한 그대로인가.” 여기서 동풍(東風)이라 함은 지난 삼일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언급한 ‘한일 파트너십’에 기반한 새바람이다. 허나 거스르기 힘든 바닥 민심은 돈(배상금)은 그렇다 쳐도 마음만큼은 일본의 사죄와 반성을 재차 확인하고 또 확약하는 뭔가가 있었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일러스트=김성규

# 하서 김인후가 양산보에게 한시를 지어 보낼 그즈음(1548년) 독일 작센의 선제후(選帝侯) 모리츠(Moritz von Sachsen)는 자신의 영지 내에 있던 드레스덴에 궁정악단을 만들었다. 475년 전의 일이다. 이것이 독일 클래식의 오래된 자존감이라 할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모태다. 지난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협연이 있었다. 1953년생인 정명훈은 약관의 나이를 갓 넘긴 21세였던 1974년 냉전의 한 축이었던 소련의 심장부 모스크바로 들어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하며 일약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사실상의 우승자나 다름없던 그는 모스크바에서 도쿄를 거쳐 김포로 들어와 서울 시내까지 축하 카퍼레이드를 벌인 당사자가 됐다. 당시는 냉전 시대였고 유신 독재하에서 경제개발의 발동이 걸려 있긴 했지만 여전히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을 갓 넘긴 젊은이가 당시 냉전 체제하에서 우두머리 적성 국가였던 소련 모스크바에 들어가 피아노 콩쿠르에서 쾌거를 이뤘다는 사실만으로 자존감에 온 국민이 감격했던 때가 바로 그 시절이다. 그런 그가 70세 고희(古稀)의 나이에 지난 2012~13시즌부터 수석 객원 지휘자로 활동해 오고 있는 세계 최정상의 자존감 높은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대한민국 서울 예술의 전당 포디엄에 선 것이다.

# 그런가 하면, 피아노 앞에 앉은 조성진은 2015년 그 역시 스물한 살 나이에 명실상부하게 세계 최고로 자타가 인정하는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클래식계의 아이돌이다. 이후 더 깊어지고 성숙한 모습으로 그날의 협연에 이르렀던 것이다. 약 40년 간격의 한 세대를 이어가며 고희의 아버지뻘인 정명훈과 서른 살을 눈앞에 둔 아들뻘의 조성진이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를 조율하고 협연하는 모습은, 한 세대의 세월 만에 클래식 불모지에서 클래식 최정상의 나라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을 상징하는, 한 컷의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삽화처럼 내 가슴에 새겨졌다. 문화적 자존감의 강력한 낙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연주가 시작도 되기 전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이 협연되는 내내 나는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으리라. 예술의 전당 전석을 입추의 여지 없이 꽉 채운 3000여 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슈타츠카펠레 단원들마저 그러했다. 1악장 후반부에 피아니스트 홀로 독주하는 부분에서 슈타츠카펠레의 전 단원들을 살펴보니 잠시 쉬는 것이 아니라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에 넋을 잃은 듯 빠져드는 모습이 아니던가. 그만큼 조성진의 연주력은 사람을 몰입시킨다.

# 나는 조성진이 예원을 다니던 중학생 시절 그를 처음 봤다. 서초동의 모차르트홀에서 신수정 전 서울음대 학장과 단둘이 객석에 앉아 그의 연주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다소 통통하고 앳된 중학생의 연주가 나를 ‘몰입’시켰다. 내가 음악을 잘 알아서가 아니었다. 쇼팽의 스케르초로 기억되는 곡을 그가 연주할 때 내 몸이 점점 그에게로 기울었던 솔직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 몰입의 힘이 조성진의 힘이었다. 그 힘이 점점 자라 이제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운집한 3000여 관중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더 나아가 전 세계 청중을 몰입시키고 있다. 물론 조성진의 몰입력은 그 개인에게 그치지 않는다. 후배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위시해 전 세계를 매료시키는 코리안 클래식의 놀라운 질주로 이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 모두가 공감하듯이 대한민국의 문화력은 가히 세계 최정상 수준이다. 영화 등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클래식 같은 고급 문화에서도 예외 없이 그러하다. 그만큼 우리는 자존감 있는 나라가 되었다. 반세기 전 아니 십 수년여 전까지도 ‘엽전’이 별수 있고, ‘조센진’이 오죽하랴 하는 식의 자기 비하가 일상어였던 나라가 이제는 “대한민국이, 코리아가 하면 다르다”는 자타 공인의 상찬의 말로 바뀌지 않았는가.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에서부터 독립해 70여 년이 되어갈 무렵 랠프 월도 에머슨은 자신의 에세이 ‘자연’에서 ‘마투티나 코그니티오(matutina cognitio)’라는 라틴어를 이야기한다. ‘이른 아침의 각성’이란 뜻으로, 어둠이 가시며 날이 채 밝기 전 새벽녘 샛별 같은 깨달음이라고나 할까? 작금의 혼돈 속에서 대한민국을 되살리려면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존감을 잃지 않고 세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