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렇게 나쁩니까?”(영화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 대사)
“왜(倭)가 그렇게 나쁩니까?”(영화 ‘한산’에 빗댄 패러디 대사)
영화의 명대사들이 인터넷의 유희로 변화한다. 올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이순신 3부작’의 두 번째 영화인 ‘한산: 용의 출현’이 그 대상이다. ‘헤어질 결심’에 나온 대사들을 고스란히 패러디해 ‘한산’의 대사로 바꾸는 놀이. 두 영화의 공통분모는 배우 박해일. 두 작품에 모두 출연한 그는 ‘헤어질 결심’에서 산 정상에서 추락한 중년 남성의 변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해준 역, ‘한산’에서는 주인공 이순신 역을 맡았다. ‘헤어질 결심’은 관객 170만명, ‘한산’은 300만명을 각각 돌파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씨가 다섯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유려하면서도 문어적(文語的)인 대사들이 인터넷에선 정반대 의미로 패러디되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장치가 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헤어질 결심’에서 용의 선상에 오른 중년 남성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형사 해준의 진지한 대사들은 ‘한산’을 빗대서 이렇게 변형된다. “조선이 그렇게 만만합니까?” “저 왜군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왜군은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온라인에서 이미지·영상·유행어들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문화적 현상을 ‘밈(meme)’이라 부른다. ‘밈’은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의 1976년 베스트셀러 ‘이기적 유전자’에 나온 용어. 음악이나 패션, 도자기와 건축 양식 같은 문화적 산물이 전달되고 확산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문화적 전파나 모방의 기본 단위라는 뜻으로 ‘문화 유전자’라고도 부른다. 2022년 여름 문화계에서 가장 강한 전파력을 가진 유전자는 ‘헤어질 결심’과 ‘한산’인 셈이다.
예전에는 영화가 개봉하면 진지한 평가와 찬반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면, 지금은 인터넷 공간에서 지극히 가볍고 유쾌한 놀이로 소비되고 있다. 영화 평론가 윤성은씨는 “누구나 창작자(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온라인 세계야말로 더 많은 사람을 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최적 환경”이라며 “동시대 하위 문화가 주류 문화를 독특한 스타일로 변형·조합한 뒤 빠른 속도로 전파하면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라고 풀이했다. 영화계도 소문이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그리 싫지 않은 눈치다. 영화 투자 배급사 관계자는 “특정한 작품이 유행어를 만들어낸다는 건 그만큼 파급력이 있다는 뜻”이라며 “‘헤어질 결심’의 작품성, ‘한산’의 대중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