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KTX를 탔을 때 객실 세면대 수도꼭지 아래 손을 넣고 기다리다 물이 나오지 않아 잠시 당황한 적이 있다. 당연히 적외선 센서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물은 나오지 않았다. 페달을 밟아야 물이 나오는 방식의 세면대 앞에서 손만 내밀었던 것. 개통 이후 수백 번은 이용했을 텐데, 센서식 세면대가 구비된 KTX와 해외여행에서 탔던 열차들에 익숙해진 사이 뭔가를 조작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형태나 구조를 통해 사람에게 특정 행위를 유도하는 디자인을 ‘행동유도성(affordance) 디자인’이라고 한다. 수도꼭지는 그 대표적 사례로 통한다. 예컨대 물이 나오는 꼭지 주변에 손잡이가 있다면 다른 종류의 손잡이와의 형태적 유사성 덕에 쉽게 돌리는 행위를 연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외에 당겨서 여는 방향엔 손가락을 거는 고리를, 반대편은 살짝 튀어나온 버튼을 붙여 자연스럽게 밀거나 당길 수 있도록 만든 문 손잡이 같은 것들도 행동유도성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열차 디자이너는 세면대 앞에서 사람들 손이 자유롭지 않은 경우를 주목해 수도꼭지 대신 페달을 달았을 것이다. 페달은 보통 차량 속도를 조절하거나 피아노나 오르간의 음색을 조절할 때, 그도 아니면 쓰레기통의 문을 여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좁은 열차 화장실에서 페달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디자인 의도와 달리 적외선 센서를 예상하며 나오지 않는 물을 기다리는 행동을 유도(?)받은 셈이었다.
이렇게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을 때, 꼭지 우측에 붙어 있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물은 마실 수 없습니다.’ 조금 엉뚱했다. 요즘 누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신다고. 물이 배출되는 관이 공항이나 공원 음수대와 달리 위를 향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장소에서는 오해를 줄이는 것이 아마도 더 중요했을 것이다. 나처럼 같은 물건에서 완전히 다른 뜻을 읽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을, 그 글은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