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장애인 학대·착취’ 사건을 고발받았지만 직접 수사하지 못하고 경찰에 넘겨야 하는 것으로 14일 전해졌다. 국가인권위법에 인권위가 범죄를 적발하면 검찰에 고발하게 돼 있는데도, 지난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장애인 피해 범죄를 검찰 수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법적 모순을 일으킨 것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인권위는 지난 9일 지방의 한 장애인 거주 시설 종사자들을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위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들이 2020~2021년 장애인 6명에게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학대하고 노동과 헌금을 강요했다는 내용이다. 인권위가 이 사건을 경찰이 아닌 검찰에 고발한 것은 인권위법 45조에 따른 것이다. 인권위가 조사 과정에서 범죄를 포착하면 검찰총장에게 고발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검찰총장은 인권위 고발을 받으면 3개월 안에 수사를 마쳐야 한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인권위가 경찰을 거치지 않고 바로 검찰에 고발할 수 있게 한 것은 인권 보호를 신속하게 하라는 취지”라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작년 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를 6대 범죄로 제약하면서 장애인 피해 범죄는 검찰이 수사할 수 없게 됐다. 장애인 피해 범죄는 모두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은 수사 지휘도 못하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4~5월 검수완박을 강행하면서도 장애인 피해 범죄를 검찰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경찰이 무혐의 처리해도 인권위는 재수사를 요구하는 이의 신청도 못한다. 검찰 관계자는 “인권위법에 검찰 고발 규정을 둔 취지를 무시하고 수사 공백과 인권 보호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법무부가 지난 12일 입법 예고한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인권위법, 5·18 진상규명법, 국회 증언·감정법 등 개별 법률로 검찰에 고발하게 돼 있는 사건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시행령은 그대로 확정되면 다음 달 10일부터 적용된다. 다만 인권위가 지난 9일 대검에 고발한 장애인 학대·착취 사건은 시행령 개정 전에 접수된 사건이라 검찰이 수사하지 못하고 경찰로 보낼 수밖에 없다. 법무부 관계자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법과 제도를 계속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