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나달(36·스페인·세계 5위)은 자서전에서 “내가 세계 어디에 있든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는 반드시 생중계로 보고, 훈련 일정도 거기에 맞춘다. 그만큼 광신도이며 나중엔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이 되고 싶다”고 했었다. 공교롭게도 28일(이하 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렸고, 나달은 직접 경기장을 찾아 응원했다.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16강을 불과 17시간 앞두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 안 했다.

나달의 응원 속에 레알 마드리드는 리버풀을 꺾고 통산 14번째 챔스 우승컵을 들었다. 이제 나달의 시간이다. 그도 이번 프랑스 오픈에서 14번째 트로피 획득에 도전한다. 그러나 29일 16강부터 태산이었다. 상대는 펠릭스 오제알리아심(22·캐나다·9위). 나달은 지금껏 프랑스 오픈에서 ‘108승 3패’라는 경이적인 승률을 뽐내왔지만, 이날은 달랐다. 첫 세트에서 브레이크를 두 번 허용하며 기선제압을 당했고, 결국 4시간 21분에 걸쳐 풀세트 접전을 벌인 끝에야 세트 스코어 3대2(3-6 6-3 6-2 3-6 6-3) 역전승을 거뒀다. 109번째 승리를 해냈지만 고질적인 발 부상의 여파와 눈에 띄는 체력 저하가 팬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8강 상대는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34·세르비아)다. 둘이 2020년 결승에서, 지난해 4강에서, 올해 8강에서 격돌하는 것이 세월을 말한다. 조코비치는 16강에서 디에고 슈와르츠만(30·아르헨티나·16위)을 2시간 15분 만에 세트 스코어 3대0으로 완파했다. 백신 접종 거부로 올 시즌 상반기 일정이 꼬였지만 예전 기량을 빠르게 찾아가고 있다. 역대 프랑스오픈에서 나달이 세 번 졌는데, 그중 두 번이 조코비치에게 당한 것이다.

조코비치는 나달과의 통산 59번째 맞대결을 앞두고 “큰 도전이 되겠지만 난 준비가 됐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반면 나달은 “매 경기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뛴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둘은 31일 밤에 격돌한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고 습기가 많아져 흙이 공에 달라붙기 때문에 선수들은 흡사 무거운 돌멩이를 라켓으로 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년 4강 맞대결에선 조코비치가 이겼는데 그때도 밤 경기였다. 하지만 프랑스 오픈의 나달은 ‘흙신(神)’이기에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 또 하나의 역사가 쓰여지리란 것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