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반팔 셔츠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40대 남성 A씨가 작년 4월 25일 밤 8시, 대구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걸어 들어왔다. 머리에 압박 붕대를 하고 있었고 셔츠의 절반은 피에 젖어 있었다. 그의 왼쪽 관자놀이 부근엔 가로, 세로 각각 5cm 길이의 십자형(十) 상처가 나 있었다. A씨는 응급실 의사의 질문에 대답을 했고, 가끔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픽=양진경

A씨는 당시 이 병원을 포함해 대구 소재 병원 응급실 3곳을 찾았지만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하고 열상(裂傷)에 의한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대구경찰청은 지난달 22일, 이 3곳 병원의 응급의학과 교수 4명과 응급 구조사 2명을 ‘재판에 넘겨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했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나는 응급 환자가 내원했는데도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본지 취재 결과, ‘진료 거부 의사’로 송치된 4명 중 3명은 A씨가 상처를 입고 내원했을 당시 A씨를 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명은 병원 직원들에게서 A씨가 내원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들이 모두 진료를 거부했다며 검찰에 송치한 것이다. 응급실 의사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환자를 진료 거부했다는 건 완전히 난센스” “밤새 응급 환자를 본 의사들을 환자를 내팽개친 범죄자로 낙인찍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밤새 중환자 돌본 의사, 하루아침에 진료 거부범으로”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 당시 A씨를 가장 먼저 진료한 대구의 종합병원 응급실 의사는 그에게 상급 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것을 권고했다. 상처가 단순 열상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깊어 성형외과 의사가 있는 큰 병원에 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한 것이다.

A씨는 이후 한 대형 병원을 찾았는데, 환자를 분류하는 이 병원 응급 구조사에게 “증세가 중하지 않으니 다른 병원을 가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이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 중이던 의사 2명 중 1명은 응급 구조사에게 ‘이마가 찢어진 환자가 걸어 들어왔다’는 말만 듣고 비(非)중증이라고 판단해 다른 환자를 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의사 1명은 당시 한창 응급 환자 진료를 하고 있어 A씨의 내원 사실 자체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이 병원 응급실은 환자들이 몰려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A씨는 또 다른 대형 병원 응급실을 찾았지만, 여기서도 “성형외과 진료를 할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응급실에 걸어 들어온 그가 급하게 치료해야 할 중환자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 응급실 의사는 “응급 구조사에게 ‘성형외과 진료가 필요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냈다’는 사후 보고만 받았다”는 입장이다.

이 병원의 응급 구조사는 A씨에게 119를 불러 성형외과 전문의가 있는 병원으로 가라고 권고했다. 이때까지 A씨는 그가 입원 중이던 한 병원의 직원이 모는 차를 타고 열상을 치료할 병원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119 구급차로 다른 병원으로 향하던 A씨는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이날 밤 9시 33분 심정지 상태로 이 병원 응급실로 되돌아왔다. 그제야 이 병원 응급실 의사가 A씨를 보고 응급 처치를 했다. 약 40분간 심폐 소생술을 했지만 환자는 밤 10시 5분 사망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열상에 의한 과다 출혈이었다. 열상을 입은 A씨가 1시간 30분가량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사망했다는 의미였다. 경찰 관계자는 “병원에 처음 올 때부터 A씨는 피가 셔츠를 적시고 바닥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위중한 상태였는데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 인사들은 “마지막 병원의 검사에서 A씨는 빈혈 상태지만 급하게 수혈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했다.

사고 원인과 별개로 경찰의 이번 결정은 법적 논란이 예상된다. 응급 의료 거부로 의사를 처벌하려면, 의사가 응급 환자를 발견하거나 진료 요청을 받았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하지만 송치된 의사 4명 중 3명은 숨진 환자를 본 적이 없거나 진료 요청 자체를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대구의 한 응급실 의사는 “밤새 중환자들을 진료하고 나온 의사가 하루아침에 진료 거부범이 된 격”이라고 했다.

또 당시 A씨를 보지 못한 의사 3명은 모두 중환자 등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걷고 말할 수 있는 A씨보다 다른 환자 치료가 더 급하다고 본 이들의 판단이 정당한 진료 거부 사유가 아니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병원엔 당직 중인 성형외과 의사도 없었다고 한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는 “처음 환자를 본 의사도 ‘큰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의학적 판단을 내린 것일 뿐”이라며 “수용 능력이 안 되는 병원이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할 환자를 잡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