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상가 앞. 검은 장갑을 낀 송파구청 관계자 2명이 철제 낫으로 ‘휘발 영수증 아이폰 비번 이것이 잡범이다!’라고 적힌 현수막의 끈을 잘라냈다. 야당이 설치한 이 현수막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비방하는 내용이다. 철거를 지켜본 송파구민 서모(57)씨는 “내용이 불쾌해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현수막이 잘려나가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이날 송파구에서만 이 현수막 10개가량이 철거됐다.
송파구는 지난달 기초 단체 중 최초로 ‘혐오·비방·모욕’ 문구가 담긴 정당 현수막 금지를 조례로 만들었다. 이날 이 조례를 근거로 처음으로 현수막을 철거했다. 어떤 현수막을 철거할지는 주민들이 직접 결정한다. 송파구는 지난달 말 현수막 내용을 판단할 주민평가단 49명을 선발했다. 구청이 혐오 현수막을 주민 투표 안건으로 올리면 평가단 3분의 2 이상이 철거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 배심원 제도를 차용한 의사 결정이라고 송파구 측은 밝혔다.
철거된 현수막 평가에는 24명이 참여했는데, 이 중 20명이 혐오·비방·모욕 현수막이라고 답해 철거가 결정됐다. 송파구는 다음 철거 후보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을 ‘퇴행할 결심’으로 표현한 현수막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비방한 현수막 등을 올릴 예정이라고 한다.
송파구가 조례를 만든 건 작년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면서 비방이나 인신 공격성 정당 현수막이 거리에 과도하게 내걸렸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혐오 현수막을 자진 철거하겠다고 했지만, 나머지 정당들은 여전히 혐오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주민 민원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송파구 관계자는 “올해만 혐오 현수막 관련 민원이 400건 가까이 된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정당 현수막 민원이 빗발치자 여야는 현수막 난립 방지법을 올해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관련 내용이 담긴 옥외광고물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법안 시행은 내년 1월부터 이뤄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법 개정으로 혐오 현수막 난립을 막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안에는 현수막 개수 제한 내용이 담겼지만, 혐오·비방·모욕을 담은 현수막 방지 관련 조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