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문수진(27)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걸었다. 통화 도중에 하는 일을 물었더니 대뜸 수화기 너머에서 “지금은 그냥 백수”라는 경쾌한 답변이 나왔다. 자칭 ‘청년 백수’가 올해 큰일을 해냈다. 제75회 칸 국제 영화제의 단편 경쟁 부분에 공식 초청 받았으니 말이다. 실사(實寫) 영화가 아니라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이 이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2013년 문병곤 감독의 단편 영화 ‘세이프’가 이 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문수진 감독의 이번 초청작은 6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각질’.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인 그의 졸업 작품이다. 24일(현지 시각) 칸에서 만난 문 감독은 “학교 졸업 작품으로 칸까지 찾게 될 줄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그의 작품 발표회를 지켜본 독립 애니메이션 배급사 씨앗 측에서 해외 영화제 출품을 제안했고, 지난달 공식 초청 발표 소식을 접했다. 문 감독은 “제 영상이 뉴스에 소개되는 모습을 보신 부모님께서 ‘우리 딸, 유명인 다 됐네’라며 신기해하셨다”고 말했다.
‘각질’은 타인에게 비난받지 않기 위해 외출할 때마다 인공 가죽으로 된 거대한 인형을 뒤집어쓰는 상황을 묘사한 작품이다. 인형은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지만, 정작 인형 속의 주인공은 무표정하다. 아무런 대사 없이 시각적으로만 내적 갈등을 표현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비친 외면적 모습과 나 자신의 내면적 모습 가운데 어떤 쪽이 진짜 나 자신인지 혼란과 갈등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극히 청춘다운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인 셈이다. 그는 “나 자신을 숨기거나 변호하는 법 없이 솔직하게 작품에 담고 싶었다. 이 때문에 전체 작업 기간 3년 가운데 기획에만 1년 가까이 걸렸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미술 학원에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한국애니메이션고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애니메이션 작가의 꿈을 키웠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이나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곤 사토시(1963~2010)의 ‘퍼펙트 블루’ 같은 작품들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27일 칸 영화제에서 공식 상영된다. 다음 달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등에도 잇따라 초청받아서 올여름 유럽 일대를 ‘순회’할 예정이다. 그는 “아직 컴퓨터 프로그램부터 작화(作畵)까지 많은 걸 공부해야 하는 시기”라며 “앞으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서 ‘1인분’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시작할 즈음 칸에는 여우비가 내렸지만, 마칠 적에는 하늘이 다시 맑게 개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