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 지음·그림 | 이명아 옮김 | 곰곰 | 38쪽 | 1만5000원
어느 날 바닷가에 나갔던 형과 내가 한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집으로 데려왔더니 부모님은 함께 지내도록 허락하며 방을 내줬다. 처음엔 입을 꾹 닫았던 아이. 우리 가족은 이 아이를 ‘마리나’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단 말문이 터지자, 마리나는 믿기 어려운 얘기를 쏟아낸다. “우리 엄마는 바다의 왕비고 아빠는 왕이야. 바닷속에는 공원이랑 수영장이 딸린 큰 성, 물자동차가 달리는 롤러코스터에다 뭐든 살 수 있는 쇼핑센터도 있어!”
마리나는 ‘언니와 싸워서 집을 나온 것 뿐’이라고 말한다. 형은 당장에 “못 믿겠다”며 실랑이를 벌인다. 마리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동화 속 얘기 같은 그 말은 어디까지 진실인 걸까.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도입부 그림에서 해변에 엎드린 아이를 보는 순간, 내전 중인 시리아를 탈출했다가 배가 난파돼 터키 바닷가에서 숨진 채 발견됐던 세 살배기 쿠르드족 소년의 사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마리나는 멀쩡히 살아나 자기가 와 닿은 곳의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아간다. 마치 죽은 난민 소년의 비극은 기억하면서, 왜 당신들 곁에 살아가는 수많은 다른 난민들, 혹은 다른 겉모습이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귀찮아하고 차별하는지 묻는 것처럼.
먼 나라에 홀로 떨어진 마리나를 불쌍하다 여기는 것도 편견일지 모른다. 낯선 문화와 배경을 가진 상대를 대할 땐 먼저 귀 기울여 그들을 말을 듣고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선입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마리나는 피부색을 갖고 놀려대는 못된 어른의 허벅지를 바지가 찢어져 맨살이 드러나도록 세게 물어 혼내준다. 차별과 부당한 대우에 맞서려면 남의 도움을 바랄 게 아니라 스스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형에게 심한 말을 들은 마리나가 사라진다. 그리고 마리나를 처음 발견했던 그 바다에서 가장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깊이 생각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책. 작가 니콜라우스 하이델바흐는 ‘세계 아동문학 노벨상’으로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에 2018년부터 내년까지 연속 네 번(격년제 시상)이나 독일을 대표하는 후보로 추천받았다. 독일에서도 ‘신비와 인간 존엄성, 설익은 편견에 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할 거리를 주는 책’이라는 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