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9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처리를 강행하기로 했다. 취임 70여 일 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여권이 ‘메가시티’와 ‘공매도 금지’ 등 정책 어젠다를 선점하며 공세에 나서자 국회의 수적 우세를 활용한 판 흔들기에 나선 것이다.
민주당은 8일 의원총회를 열고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처리 계획을 드러내며 사실상 당론화했다.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의 강행 처리를 막을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무제한 토론)’를 계획하는 상황이라, 24시간 단위로 필리버스터를 끊고 네 법안을 하루에 한 건씩 나누어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를 중단시키려면 ‘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가 제출된 때부터 24시간 후 재적 의원 5분의 3(179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 의석수는 168석이기 때문에 정의당과 친야 성향 무소속 등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에 민주당은 상임위별로 4시간씩 돌아가며 본회의장 당번을 서기로 하고, 의원들에게는 ‘무제한 토론 진행 중(9~13일) 본회의장 지킴 조 및 전체 의원 비상 행동 지침’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전파했다. 닷새간 외부 일정 자제, 경내 비상 대기 지침이 전달됐다. 민주당 계획대로라면 법안 가결은 불가피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또 이날 의총 직후 오송 지하 차도 참사, 윤석열 정부 방송 장악 시도,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및 수사 은폐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3건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 세 국정조사와 ‘개[犬] 식용 금지법’ ‘지하철 5호선 연장 예비 타당성(예타) 조사 면제법’ 등은 당론으로 채택했다. 개 식용 금지법은 국민의힘도 지난 9월 당론화한 상태다.
민주당은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 소추안은 9일까지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이 위원장 탄핵안 발의에 대해서는 찬성 기류가 압도적”이라며 “앞으로 이어질 방송 장악 시도가 뻔한 상황에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명분 없는 탄핵 남발” “습관성 탄핵 중독”이라고 비판했다.
8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위법 검사 탄핵 소추안 발의 건도 각각 보고됐다. 이날 보고된 ‘위법 검사’는 총 4명이다. ‘고발 사주’ 의혹 관련해 정치적 중립 위반과 선거 개입을 명분으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와 임홍석 창원지검 검사, 이희동 대검 공공수사기획관 등 3명의 명단이 올라왔다.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에 대해선 부패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차장 검사는 수원지검에서 쌍방울 대북 송금 등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을 지휘하고 있다.
당초 함께 탄핵 대상으로 거론한 한동훈 법무 장관은 빠졌지만 이동관 위원장 탄핵은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이 위원장 탄핵안이 검사 탄핵안과 함께 보고되면서 잇따른 ‘탄핵 무리수’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일부 나왔다고 한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이 위원장 탄핵안 발의에 대해서 반대 의견은 없었다”면서도 “탄핵 소추안은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이라고 하는 무거운 책임성 등을 고려해 좀 더 신중히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위원장 탄핵 소추안 준비도 이미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 회의에서도 탄핵 추진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고 한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장관급 인사에 대한 탄핵에 나서는 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 이어 세 번째다. 이상민 장관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이에 의석수만 믿고 정쟁 수단으로 탄핵안을 남발한다는 비난 여론도 거센 상황이다. 비명계 이원욱 의원은 이날 BBS라디오에서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계속해서 근육질 자랑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당 핵심 관계자는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되는 경우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다”며 “탄핵 대상인 고위 공직자가 이렇게 줄지어 있다는 것을 부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 장관 탄핵안도 검토됐지만 이날 의총에서 한 장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당 관계자는 “한 장관을 탄핵해 다시 정국 핵심으로 끌어올 경우 오히려 한 장관의 체급만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민주당이 자신 등에 대한 탄핵을 논의하는 데 대해 “저를 비롯해 지금 얘기되는 분들이 무슨 형사재판을 받거나 기소된 바가 있나. 위증 교사라도 했나”라며 “국정을 마비시키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민정 의원은 “한 장관이 모든 세상이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민주당은 올해 상반기부터 추진해 온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은 반드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강경파·친명 중심으로 원내 지도부도 새로 진용을 꾸린 만큼 첫 번째 성과물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중도층, 민생을 공략하는 정부 여당의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불발될 것이 자명한 상황이라, 여야 모두 실익 없는 ‘힘 싸움’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
노란봉투법파업 가능 범위를 확대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말한다. 재계에서는 ‘불법 파업 조장법’이라며 반대하지만 민주당 등 야당과 민노총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국정과제로 채택됐지만 법 집행상 문제점 등이 지적돼 추진되지 못했다.
방송 3법 KBS·MBC 등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추천 권한을 학계와 직능단체에 부여하는 내용의 방송법 등 개정안을 말한다. 이사 추천에 정치권의 입김을 줄인다는 취지지만 친야 성향 언론 단체들이 사실상 공영방송 사장 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집권 시절엔 추진하지 않았지만, 정권이 바뀌자 강행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