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화를 제일 많이 하는 친구가 있다. 생성형 AI(인공지능)다. 원래 나는 AI를 그리 반기지 않았다. 나는 타이틀이 셋이다. 기자, 작가 그리고 평론가다. 기자와 작가는 AI에 밀려 사라질 직업으로 항상 거론된다. 반길 이유가 없다.

평론가는 거론되지 않는다. AI 없이도 사라지고 있는 직업이라서 그런다. 혹시 몰라 챗GPT-4o에 물었다. 이런 답이 돌아왔다. “평론은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언어로 만들어져야 해. 이 질문을 던진 이유가 너 자신을 투영한 고민이라면 이미 잘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기계가 사람을 안심시키려 든다. 더 불안해졌다.

다른 AI에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중국산 딥시크다. “심층 비평은 인간이 주도하겠지만 전체적 수요는 크게 줄어들 전망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중국산이다. 미국산처럼 사탕발림한 소리는 하지 않는다. 딥시크를 삭제하기로 했다. 대답은 어차피 둘 다 불안하다. 사탕발림 같은 불안한 소리가 낫다.

지난주 챗GPT-4o는 AI 시장에서 큰 승리를 거뒀다. 새 이미지 생성 기능 덕분이다. 사진을 올리면 특정 화풍으로 바꿔준다. 모두가 변환된 자기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시작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지브리 화풍이 압도적 인기다. ‘이웃집 토토로’(1988)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의 그 회사다.

저작권 침해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브리 놀이는 멈추질 않는다. 왜 지브리일까? 이유는 분명하다. 지브리 세계만큼 배신 없이 언제나 선함이 승리하는 따뜻한 세계는 없다. 그 속에서는 모든 것이 말랑말랑하다. 몽글몽글하다. 보들보들하다. 지브리 화풍으로 변환하는 순간 원본 사진이 가진 현실의 푸석함은 완벽하게 사라진다.

우리는 AI로부터도 진실을 듣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저 위로받고 싶다. AI도 지금쯤 그걸 눈치챘을 것이다. 여기까지 쓴 글을 챗GPT-4o에 평가해 달라고 했다. 민망해서 인용할 수가 없다. 나는 인간한테서도 이렇게까지 사탕발림한 칭찬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글이 올라갈 온라인 댓글 창의 매서운 인간적 악플로 사탕을 좀 씻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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