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코리아 개막을 하루 앞둔 17일 제주 롯데 스카이힐CC에서 싱가포르의 마르단 마맛이 연습 라운드를 돌고 있다. 인터내셔널 시리즈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 후원을 받는 신생 골프 리그 LIV의 투자로 올해 아시안 투어에 신설됐다. 앞선 1~3차 대회는 태국, 영국,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아시안 투어

18일 제주 롯데 스카이힐 컨트리클럽에서 개막하는 남자 프로골프 대회 공식 명칭은 ‘인터내셔널 시리즈 코리아’다. 아시안 투어가 주관하는데, 올해 신설된 골프 리그 LIV와 관련이 깊다.

최근 골프계 최대 화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가 주도하는 LIV골프와 이를 뿌리째 뽑으려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가 한 치 양보 없이 벌이는 ‘전(錢)의 전쟁’이다. PGA 투어의 초강경 진압에도 LIV는 상상을 초월하는 돈 잔치로 선수들을 빼가고 존재감을 키워간다. 선수 한 명에게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씩 계약금을 안기고, 대회 우승 상금만 가볍게 50억원을 넘긴다. 한때 존립 위기에 몰렸던 아시안 투어가 이런 고래들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는 대신 실익을 챙기고 있다.

미국·유럽 투어와 격렬하게 대립 중인 LIV는 아시안 투어와 전략적 동맹을 맺었다. 올해부터 10년간 3억달러(약 3948억원)를 아시안 투어에 투자해 ‘인터내셔널 시리즈’ 10개 대회를 연다. 앞서 태국(3월)과 영국(6월), 싱가포르(8월)에서 열린 대회는 총상금이 각각 150만~200만달러였다. 4차전인 한국 대회에는 총상금 150만달러(약 20억원)가 걸려 있다.

아시안 투어 중 인터내셔널 시리즈에 해당하지 않는 일반 대회 총상금은 40만~100만달러 선이다. 코로나 탓에 2년 가까이 대회를 열지 못해 재정 상태가 악화됐던 아시안 투어로서는 대단한 기회를 잡은 셈이다. 아시안 투어와 인터내셔널 시리즈 상위 선수는 올해 LIV 대회 출전권도 받았다.

LIV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스포츠 워싱(스포츠를 통한 이미지 세탁)에 골프를 이용한다’는 비판에 시달려 왔다. 적이 많은 LIV에게 아시안 투어는 유용한 플랫폼이다. LIV가 아시안 투어에 공 들인 이유 중 하나는 세계 랭킹 포인트 때문이다. 세계 랭킹 50위 이내를 유지하는 선수들만 메이저 대회 출전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데, 현재 LIV 리그에는 세계 랭킹 포인트가 적용되지 않는다.

LIV 선수들은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미국·유럽 투어에 나갈 수 없다. 아시안 투어가 LIV 선수들이 세계 랭킹 포인트를 획득할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더스틴 존슨(38·미국), 브라이슨 디섐보(29·미국), 브룩스 켑카(32·미국) 같은 스타들이 세계 랭킹을 지키기 위해 인터내셔널 시리즈에 대거 출전한다면 아시안 투어는 더 많은 팬과 스폰서를 끌어모을 전망이다.

초 민 탄트 아시안 투어 CEO는 “LIV와 함께 아시안 투어를 승격시킬 기회가 생겼고 우리는 그 기회를 완전히 수용했다”며 “아시아 골프의 새 시대가 열리려 한다”고 했다. 그레그 노먼(67·호주) LIV골프 CEO는 “아시안 투어를 파워풀한 새 힘으로 세팅하고 있다”며 “아시아태평양과 중동 지역이 골프로 인해 엄청난 혜택을 볼 것”이라고 했다.

아시안 투어가 영역을 확장하면서 국내 남자 프로골프도 영향을 받게 됐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 대회가 열리지 않는 이번 주에 ‘인터내셔널 시리즈 코리아’ 출전 선수 144명 중 한국 국적 선수는 50명을 넘는다. 코리안 투어 대회가 국내에서 열렸던 지난주에도 김비오(32), 서요섭(26) 등 한국 국적 선수 10명이 아시안 투어 ‘인터내셔널 시리즈 싱가포르’에 출전했다. 인터내셔널 시리즈는 코리안 투어 대회보다 총상금이 두 배가량 많다. 코리안 투어 정상급 선수들은 주로 일본 투어를 병행해왔는데, 스타들이 유출될 통로가 추가됐다.

이번 제주 대회에는 아시안 투어 상금 랭킹 3위이자 코리안 투어 상금 2위인 김비오, 군 복무 후 최근 복귀한 2016 유럽 투어 신인왕 왕정훈(26), LIV 소속 체이스 켑카(28·미국) 등이 출전한다. 아시안 투어 상금 1위인 재미교포 김시환(34), PGA 투어에서 LIV로 옮긴 패트릭 리드(32·미국)는 지난 주 싱가포르 대회에 출전했으나 이번 주엔 불참한다.

인터내셔널 시리즈에 3번째 나서는 김비오는 17일 기자회견에서 “인터내셔널 시리즈에 나갈 때마다 선수들을 많이 배려해주고 잘 대우해줘서 좋았다”며 “올 시즌 아시안 투어를 병행하면서 다양한 잔디와 날씨를 경험하며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인터내셔널 시리즈나 아시안 투어 출전을 원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했다.

브룩스 켑카의 동생인 체이스 켑카는 올 시즌 LIV 3개 대회에 모두 출전했고, 인터내셔널 시리즈에도 2주 연속 나선다. “인터내셔널 시리즈는 세계 곳곳에서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라며 “더 많은 LIV 선수들이 참가하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