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보>(1~14)=지난 연말 전남 신안에서 LG배 준결을 마치고 올라오던 날 있었던 일. 일행들이 상경(上京) 전세버스로 하나 둘 집결했다. 먼저 도착한 신진서는 평소 하던 대로 동료 프로들이 모여 앉아있는 뒷좌석으로 향했다. 몇 분 후 올라탄 변상일은 버스 내부를 한번 휘둘러보더니 앞쪽 시트에 짐을 내려놓았다. 대회 관계자 등 연장자들이 몰려 앉은 지역이다.

우연이거나 단순한 기분 전환일 수도 있지만 분명 낯선 장면이었다. 당시 그는 신진서에게 13연패 중이었다. LG배 결승에 앞서 서울 귀환 이틀 후엔 명인전 우승을 놓고 또 머리를 맞대야 할 처지였다. 천적과 시선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거나 전의를 다지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을까. 승부사는 동료와 적 사이를 수없이 오가는 특수 직업이다.

그로부터 한 달여 지난 1월 29일 한국기원. 두 대국자가 LG배 패권을 놓고 대좌했다. 세 살 연장인 변상일이 돌을 쥐었고 신진서가 홀수를 맞춰 백을 선택했다. 일단 출발은 신진서의 편이다. 네 개의 화점이 주르르 놓였다. 13까지는 수없이 반복돼온 진행. 여기서 백이 참고도 1, 3이면 16까지도 한 판(훗날 흑 A로 이어 준동하는 맛이 남는다). 실전에선 14로 우하귀 침입을 들고 나왔다.